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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멀리서
  • 일인칭 가난
  • 안온
  • 12,600원 (10%700)
  • 2023-11-24
  • : 7,214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

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

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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