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큰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산다. 어쩌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가벼운 건지도 모른다. 무겁고 진지함을 피하고 싶은 도망가기 위한 준비 태세라고 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사는 건 내 맘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니까. 지금 가장 가까이 직면한 일만 봐도 그렇다. 도어록이 자꾸 말썽이다. 문을 열 때마다 애를 먹인다. 건전지가 문젠가 싶어 교체했는데 아니었다. 가장 간단한 건 도어록을 교체하는 일일 것이다. 알지만 귀찮아서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온 신경을 다 쓰면서 죽고 사는 일 아니면 괜찮다고 내뱉고 있으니. 나란 인간은 참...
미루고 싶은 일처럼, 미루고 싶은 감정이 있다. 미루고 싶은 슬픔, 미루고 싶은 마음, 나중에 알면 괜찮아질 것 같은 일들.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란 서정적인 제목의 시집에서 만난 시도 그러했다. 슬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을 다스리고 다독이려 애쓰고 있었다. 그 마음이 훤히 보여서 안쓰럽다. 원래 그런 마음은 감출 수 없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울고 싶은 면 울고 싶은 대로 그렇게 놔둬도 좋다고.
슬픔이 바나보다 빨리 익는다
두면 먹겠다 싶었는데 한 개는 끝내 검게 변했다
생긴 건 저래도 맛은 있단 걸 잘 알지만
보기 좋은 슬픔이 울기도 좋은 걸 누가 모르나
손도 대기 싫어지고
한 겹 까기 전에 으깨진다
이거 갈아 먹으면 맛있어
믹서에 집어넣고 꿀을 한 바퀴 돌린다
같은 거라도 다르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다르게 만드는 재주로 슬픔도 요리할 수 있겠니
컵에는 삼키니 힘들 게
걸쭉해진 것이 담기고
먹는 건 나의 일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만
잘 먹고 그다음 잘 살고가 여태 어렵다
갈고 으깨고 때론 무언가 한 바퀴 돌려 뿌리면
못 살고 못 먹을 슬픔도 없지 않을까
상하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사람은 그런 거라고 말하는 너의 얼굴에
톡, 톡 검버섯 많아지는 걸 보니
당신이 두고 잊은 세월을 내가 반만 나눠 익고 싶었다
(「슬픔이 익을 동안 나워 잊을까요」, 전문)
슬픔이 익으면 슬픔이 아닌 게 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슬픔을 둘러싼 뽀족한 가시들이 조금 뭉툭해질 것이다. 슬픔의 원형은 그대로 있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선, 그걸 매만지는 손길이 달라진다. 시인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시를 쓰는 것이리라.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소중한 사람의 슬픔이 잦아들기를 바라서.
웃음처럼 울음처럼 졸음처럼
숨길 수 없는 현상이야 그러니 아파하지 않아도 될지 몰라
그러니 재채기처럼 애쓰지 않아도 될지 몰라
화를 내보는 것도 좋겠어
술래가 된 듯이
바통을 넘겨받은 것뿐이야
이제 이건 너의 것이란다
나를 대신해 살아주렴 살아서 사는 걸 대신하렴
생일은 축하받는데
기일은 왜 그러지 못할까
축하받는 탄생만 있는 건 아니지
그래 축하받는 죽음도 있긴 하잖아
그 사람은 끝까지 그 사람은 끝내
그랬지 그랬다
병은 앓으면 그만이고
슬픔은 울면 그만인데
죽음은 왜 지속되기만 하는 걸까
돌아갈 집이라도 있는 듯
과자를 울음처럼 뚝, 뚝 떨구는 중이었다
부츠 컷 바지가 다시 유행이래
그저 웃다가, 아득해지다가
아픔은 다른 아픔으로 잊히는 거래도
피할 때까지 피해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지, 한 명은 피했으니까
(「행복의 유행」, 전문)
그러니 이 시집은 상실을 대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상이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는 거라고.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며 시인 스스로의 고백이자 같이 살아가지는 다짐 같은 것처럼 읽혔다. 어떤 일은 나에게만 닥치는 불행과 불운처럼 여겨져 화를 내고 분노하고 울분을 토해내지만 실상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는 건 버티는 일이고 사는 건 쌓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일이라는걸.

밀어도 열렸다
하지 말란 건 꼭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 말란 말이 끝나기 전에 해버린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을 여는 건
밀고 당기는 힘만으로 역부족이다
사람은 막는 것이었다
여태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잠가두었다
그때 부탁이 있다 했다
잊지 말라고 했다
강력한 태풍이 북상중
창문마다 신문지를 붙이다
네가 아닌 너의 이름을 본다
더 버티기로 한다
(「당기시오」, 전문)
한가득 슬픔을 껴안고 슬픔과 함께 살아간다. 누구의 슬픔이 더 크고 위대한지 중요하지 않아. 그건 알 수도 없는 일이니까. 슬픈 채로 살아가는 일상, 온갖 감정을 쌓아두고 살아가는 일상, 언젠가 폭발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 모든 감정이 출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비밀인데요
친구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이를 닦다 울었습니다
이를 닦을 힘이 남은 게 부끄러워서요
아직 누굴 사랑할 용기가 남았단 거니까요
내 숨이 조금은 더럽지 않았으면
하는 다짐처럼
웃기는 일이에요
웃진 않고 있지만요
죽음 같은 걸 생각하다
내 몸을 치울 걱정을 합니다
이런 걱정을 하지 않게 할
어떤 걱정을 힘껏 떨치면서
거품을 뱉습니다
그제야 알아요
거울을 보지 않았군요
헹구지 않은 슬픔이 쌓이고
안 치운 플라스틱도 가득해요
오늘은 수요일
내일은 종이를 내놓는 날이에요
치우기 어려운 건 미루기로 해요
언제가 좋을까요
언제 다 내놓을까요
(「수거」, 전문)
때가 되면 차분해진다. 때가 되면 모든 걸 말할 수 있고 때가 되면 모든 게 제 자리를 찾는다. 다만 그때를 기다리는 게 고통이다. 영영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조바심이 나서, 몸부림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