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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가 자라는 산

















 ⎾내가 칭찬을 하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분이군요. 학생들에게 뭔가 긍정적인 말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다른 선생님들과 똑같아요." 

 친구들도 이렇게 말한다. "그래, 넌 내 친구니까, 이미 나를 좋아하는 내 입에서 무슨 다른 말이 나오겠니?"

 그만! 누군가 당신을 칭찬해 준다면, 정말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그런 일이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더라고,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것이 이렇게도 좋다는 것을 반드시 느껴 보아야 한다. 작가가 되려면, 자신을 향한 긍정적이고 솔직한 격려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여유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니까. (108~109,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계속 숨을 들이마시고 귀를 기울이고. (들이마시고,를 들이마쉬고,로 썼다가 어이쿠 하고 고쳤는데 들이마쉬고, 어쩐지 입에 쫙 달라붙는 느낌?)

칭찬에 익숙하지 않고 계면쩍은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칭찬을 들었을 때 어떤 말과 표정으로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아이구, 아니에요, 무슨, 그렇지 않아요, 하면서 칭찬을 거부(?)해 본 거,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그런데 칭찬받았을 때 날름, 제가 그렇죠? 그 칭찬 잘 받을게요, 하면 또 상대방 얼굴이 그렇게 뜨악해 보일 수가 없다. 이것도 나만의 생각인가? 배운 적 없고 해본 적 없어서 몸에도 없다. 칭찬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칭찬한 사람의 반응을 '겸손'으로 상정하고 있었을 테니 당황하거나 아니면 속으로 아니꼬워하거나?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한정된 반응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요즘은 시행착오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만큼 실수도 잦고 방법도 모르겠고 그럴 때가 많다.



⎾ '나는 개를 본다'라는 문장이 있다. 여기서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이러한 문장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개를 보고 있는 동안 개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문장 구조에 맞추어져 있고 사물을 보는 관점도 그 안에서 제한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주어-동사-목적어'의 틀에 짜 맞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런 문장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고, 신선한 세상과 만날 수 있으며, 글쓰기에 색다른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라는 지나친 우월감에 빠져 있다.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도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그들만의 삶이 있다. 개미는 자기들만의 도시를 만든다. 개들도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식물은 숨을 쉰다. 나무는 우리들보다 훨씬 오랜 수명을 가지고 산다. (114, 문장 구조에서 벗어나 사유하라)⏌


 문장 구조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글이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서 기인하는 게 많겠지. 생각이 굳어져 있으니까.

 인간의 지나친 우월감에 동감하는 바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이 그렇지 않나? 이런 모양 세상을 만든 건 8할이 인간의 '지나친' 우월감이지.

 그런데 이 챕터보다 앞선 다른 챕터에서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나온다.

"... 죽은 이들은 짐승처럼 도살되어도 상관없는 이름 없는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었고 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숭고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일어나 노란 치즈를 사러 가게로 향했고, 크고 작은 삶의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이 지상의 모든 슬픔과 겨울을 겪었고 한때 쿵쿵거리는 장엄한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85~86)

흠흠. 이 문장들은 인간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들이 아닌가요??? '그들은 동물이었고 이 세상 속에서 각자 숭고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일어나 먹이를 구하러 나갔고, 크고 작은 삶의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이 지상의 모든 슬픔과 겨울을 겪었고 한때 쿵쿵거리는 장엄한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 말 안 되나?

 '짐승처럼 도살되어도 상관없는'이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왜 걸릴까? 나는 왜 이 구절이 마음에 걸리는 걸까?



⎾ 가끔 이런 이들도 있다.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 결과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빠진 추상적인 글쓰기에서 대개 이런 허점이 발견된다. 분명히 아주 웅장한 생각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쓴 글이지만 누구도 읽어 주지 않는다. (88, 케이크를 구우려면)⏌


 이 부분에선 또 왜 찔리는 건가? 글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나 이러고 있는 게 아닐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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