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나무속 둥지
  • 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 14,400원 (10%800)
  • 2022-02-28
  • : 14,757
올해의 첫 책으로 완독한 책이긴 하지만 작년에 이어서 조금씩 나눠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은 출간되었을 때부터 유명하여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기에 읽을 때 조심해서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러 집밖에 나가 있을 때, 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닐 때 펼쳐 읽었다. 왠지 이 책을 읽는 시간은 계속 먹먹하거나 눈물을 줄곧 흘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또는 미용실에서 책을 붙잡고 읽었던 지혜로움 덕분에 눈물바람 없이 잘 읽었다.
그래도 눈가에 물기를 머금은 시간이 종종 있었다만 그정도쯤이야 하품을 수없이 했다고 생각하면 양호한 편이다.

이 책은 작가가 20대 때 엄마를 병환으로 떠나보내고 엄마를 애도하며 홀로 서서히 치유해 나가는 삶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책의 저자인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 백인 아빠 사이에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 현재 가수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이 책에서 미셸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의 입장인 대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국인과 미국인 부모를 둔 자녀 입장에서 정체성의 고민이 잘 담겨 있고, 아티스트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도 간혹 곁들여 있으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문화와 한국 음식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습성을 관찰한 대목들이 흥미롭게 골고루 잘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동안 흥미로운 지점들이 쑥쑥 튀어나오는지라 우려했었던 슬픔의 도가니에 잠기는 독서시간이 아니어 좀 다행이었다.

미셸은 20대 중반에 엄마를 잃었다.
나는 40대 초반에 엄마를 잃었는데 그 시절 왜 남들보다 일찍 엄마와 헤어져야 했을까. 이 점을 받아들이기엔 좀 헛헛하고 쓰라린 슬픔이 지금도 몰려오곤 하는데 읽으면서 미셸이 느꼈을 상실감의 그 깊이는 견주기 힘들어 안타까운 탄식만 나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엄마와 미셸의 엄마는 비슷한 면이 많았다. 미셸 어머니의 병과 돌아가신 시기도 비슷하고(1년 차이) 돌아가신 달도 똑같다. 어째 성격도 비슷한 듯도 하여 책을 읽으면서 내 엄마를 줄곧 떠올리며 읽었다.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을 보내는 미셸을 보면서 재작년 아빠를 보내고 지난 1년동안 애도하며 보낸 나의 시간도 떠올랐던지라 굉장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미셸은 H마트인 아시아계 요리 재료를 파는 마트에 장을 보러 달려간다. 엄마가 해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선 그곳에 가야만 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층은 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음식 재료를 찾아 보면서 또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미셸은 엄마가 늘 그립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저절로 H마트에서 울게 되는 것이다.

미셸의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던 듯 하다. 갈비찜도 척척 해내시고(갈비찜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면 그게 아닌가? 관점이 달라진다.) 집밥 고수자이신 듯도 하면서 가끔 한국에 여행을 들어와 미셸 눈에 담긴 음식의 특징과 맛을 잘 표현한 걸 보면 밖의 음식도 많이 찾아다니며 먹은 식도락가 기질도 있어 보인다.
아니면 미셸 자신이 먹는 걸 좋아하거나 표현력이 좋았던 걸까?
암튼 책에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군침을 절로 삼키게 되더라. 잊고 있었던 음식과 심지어 과자와 군것질의 냄새가 절로 풍겨 나도 어린시절의 추억에 한동안 잠겨 있었다.
(잠겨 있기만 했었는데 다락방 님과 단발 님의 짱구 과자 사 먹기 독후활동 사진을 보고서 참을 수 없어 딸과 함께 외출하여 집에 들어오며 나도 짱구 과자를 사 들고 와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짱구 과자를 먹으면서 계속 어린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그때 엄마가 좋아하던 과자들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다 먹고 싶어졌다. 엄마는 꿀꽈배기, 꼬깔콘(손가락에 끼우기 좋은 과자는 꼬깔콘이다. 짱구는 구멍이 작아 손가락에 잘 안 끼워져..내 손가락이 넘 굵어진 건가?), 빠다 코코넛 요 세 개의 과자도 엄마가 많이 좋아했었다.
옛날 우리집은 이른 저녁을 물리고 나면 8시 정도 시각에 온 식구들이 출출했던지라 그러면 엄마와 아빠는 가게에 가서 과자를 사오라고 하셨다. 동생들과 신나서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담아 왔는데 그때 엄마는 꼭 짱구, 꿀꽈배기, 꼬깔콘, 빠다코코넛 중 하나를 사 오라고 하셨다. 아빠는 오징어 땅콩이었고…
나는 꽃게랑이나 자갈치 고래밥 같은 해산물을 선호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달디 단 과자를 좋아하는 게 이해가 안 갔었다. 특히 빠다 코코넛은…
어린 내 입맛엔 영 느끼한 과자였었는데 엄마는 맛있다고 한 입만 먹어보라고 자꾸 권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싫다고 입 다물고 고개 흔들었던 내가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달달한 과자가 땡기는 건지 짱구랑 꿀꽈배기가 제법 맛있는 거다. 심지어 빠다 코코넛까지…
오징어 땅콩을 먹으면 아빠가 생각이 나고 짱구나 꿀꽈배기 빠다 코코넛이나 꼬깔콘을 먹으면 엄마 생각이 난다. 추억의 과자들을 보면 우리 삼형제는 어렸고 젊었던 엄마 아빠와 다섯 식구가 저녁시간을 넘긴 시간이 되면 과자 파티를 하면서 행복했었던 기운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리워한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움에 반하는 상실감이 더 커서인지 그 이유로 과자를 사 먹지 않았다. 그래서 과자를 잘 안 먹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내 손으로 과자를 사오는 나를 본 딸들이 아주 신기해했고 즐거워했다. 과자 좋아하는 딸들인지라 얻어 먹을 수 있다고 여긴 탓이리라. 짱구 한 봉지를 뜯어놓으니까 순식간에 사라짐. 나 어린 시절엔 서로의 과자는 손을 대지 않는 매너가 있었는데…(아녔나? 싸우면서 서로의 과자를 탐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남.)

책에서 미셸은 유튜버 망치 여사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잣죽을 끓여 먹는다. 잣죽 한 스푼을 넘기며 아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잣죽을 먹었을지 떠올리며 삼킨다. 슬픔과 애도의 목넘김이다. 잣죽은 그녀에게 엄마를 떠올리는 음식이 되었고 앞으로 영혼을 달래줄 음식이 될테다.
상실감을 치유하며 서서히 안정감을 얻어가는 시간들은 결국 음식이었단 것을 책을 읽으며 공감하게 된다.
내게도 엄마를 추억하는 음식이 몇 개 있어 하나 하나 해 먹으면서 기분이 좋았던 흡족함이 기억난다. 그 흡족함은 배가 불러 따라온 만족감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자리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준 역할을 톡톡히 한 흡족함이었던 것이다.

나도 엄마가 해준 음식이 먹고 싶어 여러가지 음식을 해서 먹었는데 그중 들깨찜은 못해 먹었다.(찜 요리는 좀 고난이도인 것 같다.) 아, 나는 언젠가 엄마가 해준 부추랑 조갯살 또는 미더덕 또는 고사리가 가득 든 들깨찜을 먹는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먹겠구나!(아빠는 재첩국을 사랑했던 분이라 재첩국 냄새만 맡아도 아빠 생각이 난다.) 그래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줄 치유의 음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해보곤 했는데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김치를 직접 담가먹기 시작한 이후 내 마음을 달래준 음식은 바로 김치였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엄마는 김치를 즐겨 담갔다. 김치 담그는 게 취미냐는 동네 사람들의 놀림을 아랑곳 않고 담그신 분이라 1년동안 김치를 종류별로 빼놓지 않고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삼형제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김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서 김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을 때 신기했다.
김치를 담글 줄 몰랐을 땐 사다 먹기도 했는데 내 입맛에 영 안 맞고 일단 맛이 없어 괴로웠다. 그래서 그냥 직접 담가 먹기 시작했는데 입 짧은 나로선 이게 최상이었다.
김치를 먹으면서 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이 맛에 힘들어도 김치를 직접 담가 식구를 먹였나보다. 절로 숙연해지곤 했고 별 반찬 없어도 잘 익은 김치 하나 있으면 뚝딱 뚝딱 반찬 몇 가지가 나올 수 있으니 식비 절약에도 큰 도움 되는 게 김치가 아닐까 싶어 또 엄마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결국 엄마를 가장 많이 추억한 시간은 요리를 하면서 음식을 먹는 순간들이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이건만 먹을 때는 꼭 엄마가 직접 해준 음식을 먹는 기분이 절로 들어 마음이 흡족하고 편안해진다. 이런 게 힐링푸드, 소울푸드라고 하는 건가.

미셸은 그렇게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본인의 상처를 보듬어 치유해 나간다. 읽는 사람도 절로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책을 사다놓고 상실감에 젖을까봐 두려워 읽기를 주저하고 있었는데 같이 읽어보자. 손 내밀어 준 다락방 님과 단발 님께 고마운 마음 보내드린다. 읽기를 잘했다.

헌데 원서 읽기!
이게 좀 문제네.
어떻게 읽지?
사전 한 권 들여놓으시죠? 다락방 님의 권유로 영영한 사전까지 땡스 투 누르고 구입했건만…아, 원서 읽기는 좀 두려워져..왠지 땡스 투 다시 돌려받고 싶네요?
원서를 읽는다면 좀 더 치유받는 느낌이 들까요?
아, 모르겠다.
암튼 시간은 엄청 더디겠지만 해가 바뀌기도 했으니 읽어봐야겠다. 해가 바뀌어 신년이 되면 매번 세우는 목표 중 하나인 영어공부. 올해는 부디 용두사미가 되지 않길 바란다.
책에서도 이모와 미셸이 서로의 깊은 속마음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대목에서 조금 안타까웠다. 영어 못하는 나도 저런 상황에 처하겠지? 그래도 아직은 외국인 며느리나 외국인 사위 볼일은 없겠지만(셋 다 비혼주의를 꿈 꾸는지라?) 혹시 모를 일이다.
내 비록 싱가폴에 공부하러 가진 못하더라도 그분을 본 받아 열심히 시작해보자.
그런 뜻으로 내가 했던 독후과다 활동인 과자 사진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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