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런드는 한숨지었다. 신중해야 했다. 언쟁을 중단해야 했다. 지금 반대하면 로런스의 반항심만 커질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건 뭔데?"
이건 질문이었다. 로런스는 대답하기 전에 시선을 피했다. "모르겠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끔찍한 계획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서 털어놔봐."
"연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롤런드는 아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언 매큐언 <레슨>
롤런드의 아들 로런스는 공부를 특히 수학을 탁월하게 잘했다. 그러니 대학에 가지 않은, 가기 전에 학교에서 도망쳐버린 롤런드에게 로런스를 수학에 특화된 칼리지에 보내는 건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실현된 자신의 또 다른 대리자아의 환상적인 삶이었다. 심지어 로런스는 이미 입학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역시 아들은 그의 기대를 배반한다.
이 한 장면에서 나는 딸을 떠올렸다. 나와 사춘기 딸은 자주 부딪혔다. 나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질문은 이미 내가 규정한 이상적인 답안을 전제한 것이었다. 아이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이미 그게 내가 정한 그 경로를 이탈한 것이라 틀렸다고 여기곤 했다.
오늘 아이는 수능을 보러 갔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들여보내며 내가 잘못한 일들과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며 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한꺼번에 격랑이 되어 몰아쳤다. 어쩌면 그렇게도 미숙했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 나에게 김붕년 선생님 말처럼 잠시 머물다 떠날 손님이 되어 온 아이는 인생의 한 장을 닫고 연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그럼 그렇지" 같은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