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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댄스


                                  한강


눈물은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게

나를 다 삼키진 않았죠


악몽도

이제 습관이 되었어요

가닥가닥 온몸의 혈관으로

타들어오는 불멸의 밤도

나를 다 먹어치울 순 없어요


보세요

나는 춤을 춘답니다

타오르는 휠체어 위에서

어깨를 흔들어요

오, 격렬히


어떤 마술도

비법도 없어요

단지 어떤 것도 날

다 파괴하지 못한 것뿐


어떤 지옥도

욕설과

무덤

저 더럽게 차가운

진눈깨비도, 칼날 같은

우박 조각들도

최후의 나를

짓부수지 못한 것뿐


보세요

나는 노래한답니다

오, 격렬히

불을 뿜는 휠체어

휠체어 댄스


(*강원래의 공연에 부쳐.)


........................

단상) 

이 시를 읽으니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읽은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비록 장애인의 몸이지만 어떤 악조건도 춤을 추겠다는 마음은 꺾을 수 없는 것. 


불행은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라질 때 찾아온다.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멈출 수 없으며, 오히려 고난 속에서 피어난 행복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휠체어 댄스를 추는 이들은 이미 행복을 향해 가는 길목에 들어선 거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응원한다.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김소월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모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

단상) 

과거에 세상모르고 살았던 화자는 이제 그때보다 영리해졌지만 과거처럼 세상모르고 살기를 바란다고 한다.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많다. 특히 내가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것을 말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반성하게 된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존재인가. 내 말을 들을 상대편의 기분 따위에는 관심 두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말하니.


잘못 말하고 반성하고 잘못 말하고 또 반성하고.... 반복되는 일이다.


화자와 다르게 나는 세상모르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철없이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무지해서 죄짓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



불사조


                          박연준


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이마 사이로, 냇물이 흘렀다 

​졸졸졸 

소리에 맞춰 웃었다 


​환 한 

날 들 


​조약돌이 숲의 미래를 점치며 졸고 있을 때 


​나는 

끈적한 이마를 가진 다람쥐 

깨진 이마로 춤추는 새의 알 


​이곳에서는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깨지면서 태어나 휘발되는 것 

부화를 증오하는 것 

날아가는 속도로 죽는 것


누군가 숲으로 간다 


​나는 추락이야 

추락이라는 방에 깃든 날개야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다 

꺾이는 


​나는 반 마리야 

그냥 반 마리, 


​죽지도 않아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며칠째 미동도 않잖아." 


​내가 말하자 날아가는 조약돌

​돌아와서는 

아직이요ㅡ , 한다 


​아직?


​아직


........................

단상)

내가 뽑은 구절 :

​이곳에서는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 부른다 


깨진 것들이 사랑의 얼굴이지.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이 우아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면 그건 사랑의 얼굴이 아니지. 왜냐하면 사랑이란 자기의 전부를 던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 남김없이 올인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


내가 뽑은 구절 :

​아직?


​아직


사랑이 끝났다 말한다고 해서, 이별을 했다고 해서 감정까지 정말 끝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던 거지. 감정이 끝나지 않는 것, 감정이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게 사랑인 거지. 끝난 줄 알았는데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고, 문득 그에게 달려가고 싶어지는 것, 그게 사랑이지. 사랑이 끝났냐고 자신에게 물어보면 "아직...."이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 그게 사랑이지.


사랑의 감정은 가슴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것.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소용돌이치는 것. 그래서 아직도 죽지 않고 진행 중인 것, 그게 사랑이지. 


***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단상)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자신도 원하게 되는 상태에 이르는 것.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사랑이다. 나의 의견만 중요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이다. 내가 야채만 먹고 싶더라도 그가 원하면 고기도 먹는 것. 그게 사랑이다. 


사랑은 그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위해 밥상을 차려 주고 싶은 것이므로 아무런 노력 없이 사랑을 이루기란 어려운 일.


그러므로 사랑은 거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고 특별한 사람만이 완성할 수 있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면, 노력 없이도 이룰 수 있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이 소중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



정작 그는


                                              천양희


죽음만이 자유의지라고 말한 쇼펜하우어

정작 그는

여든이 넘도록 천수를 누렸고요

자녀 교육의 지침서인 『에밀』을 쓴 루소

정작 그는

다섯 자식을 고아원에 맡겼다네요

백지의 공포란 말로 시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고백한 말라르메

정작 그는

다른 시인보다 평생을 고통 없이 살았고요

『행복론』을 써서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한 괴테

정작 그는

일생 동안 열일곱 시간밖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네요


정작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변명은 구차하고 사실은 명확하다는 것을요

정작 그는 또 알고 있었을까요


위대한 사상은 비둘기 같은 걸음걸이로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을요


........................

단상) 

인간은 '모순덩어리'이지 않은가. 그래서 교육서를 쓴 루소가 자식들을 고아원에 맡겼다는 사실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루소가 고아원에 아이들을 맡기지 않고 직접 키웠다면 그의 저작은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고. 왜냐하면 육아로 시간을 빼앗기느라 글 쓸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테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구는 집에서 글에 몰두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라르메가 평생을 고통 없이 살았기에 기껏 느낀 게 백지의 공포였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리고 고통스러우면 시를 쓰지 않으면 될 것인데 시를 썼다는 것은 그 고통에는 창작의 달콤함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정말 평생을 고통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고통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남들에 비해 평탄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 고통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삶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겪은 경험이 적은 사람은 작은 일에도 심한 타격을 받고, 고통을 겪은 경험이 많은 사람은 웬만한 일에는 심한 타격을 받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게 더 나은 인생이라고 판단할 수 없겠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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