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오후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젊은 남자였는데 위층에 산다고 한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우리집의 세탁기 소리가 시끄럽기 때문이란다.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를 작동시키면 자동으로 수도꼭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도 귀에 거슬리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거슬린단다. 나는 우리집 세탁기 소리가 요란한 것은 맞다며 인정해 주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수압이 높아 물소리가 크게 나는 것 같아 약하게 줄인 것이 그 정도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친절히 대했던 것은 그가 깍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예의 없이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면 나 역시 곱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을지 모른다. 그는 그동안 많이 참았다고 덧붙인다. 아랫집이 아니고 윗집이고 보면 그 이웃은 아파트 ‘역층간 소음’을 호소하러 온 것이다.
그 이웃은 혼자 사는데 평일에는 직장에 다녀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오니 상관없었으나 오늘 같은 일요일에는 집에서 하루 종일 지내서 세탁기 소리를 참기 어렵다고 한다. 공감이 갔다. 나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예민한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내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세탁기를 돌리지 않겠다고 답변하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에 또 다른 소음은 없냐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밤늦게 수돗물 쓰는 소리가 들린다며 안방 쪽 욕실에서 그 소리가 전달되어 잠을 자려고 할 때 방해가 된다고 한다. 둘이 얘기를 하고 보니 짐작이 되는 게 있었다. 내가 잠자기 전에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하는데 그때 수도가 틀어져 있는 동안 발생하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소리는 위로 올라간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밤 10시 이후에는 그 욕실의 수도를 틀지 않겠다고 그에게 약속했다. 10시 안에 샤워를 끝내면 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요즘 난 주말에는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매일 밤 10시 이후엔 안방에 딸린 욕실의 수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욕실은 나만 사용하니 우리 가족 중 나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밤늦게 씻어야 할 때는 거실에 딸린 욕실을 사용하면 된다.
그가 우리집 위층으로 이사 온 것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이 집에 우리 가족이 10년이 넘도록 살면서 소음 피해에 대해 언급한 이가 그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에게 ‘예민한 총각’이라는 닉네임을 붙여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령 밤에 식구들 말소리가 커지면 “크게 말하지 마. 위의 예민한 총각이 초인종 누른단 말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식구들은 재밌는지 웃는다. 하지만 나는 그가 또 찾아올까 봐 겁이 나서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다.
처음엔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이사 오는 바람에 내 마음이 불편해져 운이 나빴다고 여겼다. 그런데 평일에 세탁기를 돌리고 늦지 않은 시간에 씻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소음 문제로 인해 뜻밖에도 두 가지 장점이 생겨서다. 첫 번째 장점은 주말엔 세탁기로 빨래를 할 수 없으니 집안일이 줄어 토요일과 일요일이 한가한 날로 느껴지는 점이다. 우리집은 남편과 둘째 아이가 매일 땀에 젖은 운동복을 벗어 놓아 빨래가 많은 편이다. 나는 빨래가 다 마르면 빨래의 먼지를 털고 나서 개어 각각의 옷장에 넣는다. 이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으니 주말이 한가한 날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장점은 저녁 식사 뒤 샤워 시간을 미루게 되는데 밤 10시가 넘으면 수도를 틀 수 없으니 일찍 씻는 좋은 습관을 들이게 된 점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세상이 되었다. 층간 소음을 이유로 다투다가 살인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하니 그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다. 소음으로 고통받아 호소를 하는 쪽이나 호소를 듣는 쪽이나 괴롭기는 마찬가지일 게다. 그래도 내 경우 양측이 타협점을 찾아 원만히 해결한 셈이니 다행이다. 그리고 소음 문제가 있는 나쁜 상황에서 두 가지 장점이 생겼으니 이것으로 위안을 삼으련다.

부산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