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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미세 좌절의 시대」
아내와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점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배달이라는 서비스에 값을 치렀고 그 가격에 배달 기사가 합의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비가 오건 그렇지 않건, 배달 기사의 안전 운행은 오로지 그 자신이 신경써야 할 몫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배달 기사가 빗길을 달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음식을 주문했다면, 그의 안전에 대해 우리도 약간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30~31쪽)
만약 후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면, 같은 맥락에서 대만 폭스콘 공장의 비인간적인 노동 실태가 폭로됐을 때 우리는 애플 제품도 거부해야 하는 걸까? 내가 잠시라도 어떤 사회 시스템에 간여한다면, 그 시스템 전반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는 걸까?(31쪽)
누군가는 그런 문제를 조사하고 있을 테고, 그 결과를 통해 법이나 협약이 개정되겠지, 나는 그 법이나 충실히 따르면 되지, 하다가 혹시 그게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논리 아니었나 싶어 불안해진다. 전체 시스템이 사악할 때 “나는 정해진 법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3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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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래여애반다라」
시에 대한 각서
이성복
고독은 명절 다음 날의 적요한 햇빛, 부서진 연탄재와 삭은 탱자나무 가시, 고독은 녹슬어 헛도는 나사못, 거미줄에 남은 나방의 날개, 아파트 담장 아래 천천히 바람 빠지는 테니스 공, 고독은 깊이와 넓이, 크기와 무게가 없지만 크기와 무게, 깊이와 넓이 지닌 것들 바로 곁에 있다 종이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연필로 그리면 남는 공간, 손은 팔과 이어져 있기에, 그림은 닫히지 않는다 고독이 흘러드는 것도 그런 곳이다(31쪽)

고독은 당신이 남긴 빈 잔
고독은 낮잠 자는 고양이
고독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터진 풍선
고독은 햇볕이 쬐는 마당의 침묵
도시인은 곳곳에서 고독을 느낀다
- 위의 시를 흉내 내어 페크가 지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