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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이란 원래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라 할 수 있죠. 나는 그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뒤틀린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는 눈조차 전혀 다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곁눈질해 보고, 언제나 겁먹은 눈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꼴사나운 놈이라고 욕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거나 아닐까, 이쪽에서 보면 어떻고 저쪽에서 보면 어떨까 하고 나를 흉보고 있는 게 아닐까?―이런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이고 따라서 누구한테도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엉터리 문학가들이 별의별 수작을 다 늘어놓는다 해도 가난뱅이임에는 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140~141쪽, 하서 출판사.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다고 느껴지는 글을 발견할 때 나는 감탄한다. 이 글을 읽고도 감탄했는데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을 경험한 적이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난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래전 그의 다른 작품 「죄와 벌」을 읽을 때 이미 그가 탁월한 역량을 가진 작가임을 알았다. 살인자가 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서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인자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할 만큼 작가는 심리학자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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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하는 서커스단에서 지내는 난쟁이는 키가 작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난쟁이가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에 어느 날 키가 커져 버렸다. 95센티미터였던 그의 키가 무려 175센티미터가 되었고 게다가 아주 잘생긴 미남으로 변했다. 난쟁이의 이름은 발랑땡이었다. 발랑땡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동료들의 공연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발랑땡은 공연장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제르미나 양을 바라보았다. 곡마사는 말 위에 서서 팔을 관중 쪽으로 뻗어, 갈채에 웃음으로 답하고 있었는데, 발랑땡은 그녀의 웃음이 결코 자신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고독이 지겨웠고 수치스러웠다. 그는 조금 전에 빠따끌라끄, 자니도 형제들, 줄넘기 곡예사 프림베르 양, 피프를랭과 일본인들 등 써커스단의 동료 대부분이 무대 위에서 줄지어 행진하는 것을 본 터였다. 그들의 공연이 모두 그를 새로이 좌절하게 했다.

“끝났어.” 그가 한숨지었다. “결코 공연장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야. 이제 바르나붐 써커스단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어.”(마르쎌 에메의 ‘난쟁이’에서)

-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280쪽.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키가 크고 미남인 것은 인생을 사는 데 유리한 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커스단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소설의 글감이 될 수 있는 이유일 듯하다. 


키가 커진 그는 서커스단에서 쓸모가 없어진 존재가 되었으므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 뒤 난쟁이였던 시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가족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경험도 없으니 생계를 위해 취업하기조차 힘들 테니 말이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에 수록된 마르쎌 에메의 소설 ‘난쟁이’는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는 것, 무엇이든 그 가치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난쟁이의 키가 커진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 가는 재미있는 단편 소설이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의 다른 작품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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