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즐거움과 위안을 얻는 시간이라 직장인들이 갖는 황금 휴가와도 같은 것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자주 길을 잃곤 했다. 만약 번역본이었다면 잘못 번역한 탓으로 돌렸을 것 같다. 빨리 읽히지 않는 점이 이 책의 단점이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아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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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선물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부도덕하게 여긴다. 선물은 경제적인 계산에 따라 주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에게 굴욕감이나 부채 의식을 안기려는 의도로 주어서도 안 된다. 선물은 순수한 마음의 표시여야 한다. 선물의 가치는 상징적인 데 있으므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물이 보잘것없다고 화내서는 안 되듯이, 비싼 선물을 받았다고 지나치게 고마워해서도 안 된다. 지나친 감사는 나를 상대방보다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고, 나의 의지를 그의 의지에 종속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너무 비싼 선물은 거절하는 게 낫다는 말도 된다. 우정은 동등성을 전제하므로, 우정을 만드는 모든 교환은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77~178쪽)
부자인 A라는 사람이 부자가 아닌 B라는 친구에게 오백만 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선물했다고 가정하자. 아마 이 선물을 받은 뒤 B는 A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면 혼자 있으니 자기 집으로 와 달라는 A의 청을 거절하고 나면 B의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A는 B에게 큰 선물을 줌으로써 권력자의 위치에 있게 되고 B는 노예의 위치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선물은 두 사람 사이의 균형을 깨지 않는 선에서 주고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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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구명보트 한 척에 의지하여 남대서양을 표류하던 영국 선원들이 24일 만에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원래 네 명이었는데, 구조되었을 때는 세 명으로 줄어 있었다. 굶주림 끝에 한 명―고아였고 가장 어렸던 선원―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자기들의 죄를 시인하면서도 정황상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샌델은 재판의 결과를 알려주지 않은 채, 우리에게 판사의 입장이 되어 판결을 내려보라고 권한다.(274쪽, 각주)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구명보트 위에서 네 사람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수평선에는 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식량이 떨어진 지 오래되어 다들 굶어 죽기 직전이다. 마침내 그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을 잡아먹기로 한다. 한 명이 보를 내고 나머지는 가위를 낸다.(274쪽)
이렇게 해서 한 명이 먹히고 세 명이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배는 보이지 않는다. 며칠 뒤 그들은 다시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을 잡아먹는다. 이제 두 사람이 남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가위바위보를 한다.
C: 내가 졌군. 하지만 너는 나를 잡아먹을 수 없을걸.
D: 왜?
C: 내가 너보다 힘이 세니까.
D: 이건 불공평해. 진 사람이 잡아먹히기로 약속했잖아.
C: 내가 공정하게 행동하면 너는 나를 잡아먹을 거잖아.
D: 두 명이 죽는 것보다 한 명이 죽는 게 낫잖아? 우리를 위해서 네가 희생해야 해.
C: 내가 죽으면 너만 남는데, 우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274~275쪽)
여기서 네 명이 한 가족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와 아이 둘이 있었다면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과연 한 명을 죽여서 나머지 세 명이 나눠 먹을 수 있을까?
넷이 모두 죽느니 셋이라도 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족 중 한 명을 희생시켜 셋이 살아남는다면 그 세 사람이 남은 인생을 편히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이 가족을 죽여서 배를 채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다 같이 죽는 게 나을 듯하다.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