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무단으로 일주일간 학교를 결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모든것이 의미를 잃은채 회색빛이 되어갔다. 내 안에서 낙엽이 떨어지듯 무언가 뚝뚝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뒤늦은 사춘기를 앓는 것처럼 그저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된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제목이 주는 단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정묘지> 산정이 주는 그 외롭고 도도한 느낌과 묘지가 주는 허무감,비장함, 단절감 같은 것들이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연작으로 된 시들을 읽어가면서 산정의 날 선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듯한 희열에 눈물이 났다. 이 책이 여러가지 상을 받은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것은 훨씬 후에 알았다. 이 책이 낡아질 만큼 여러번 읽었을때에야 비로소 표지에 쓰여있는 내용에 눈이 갔던 것이다.나는 이 책의 작품성을 말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무단 결석으로 교수님 방에 불려갔을때 책상위에 놓여져 있던 이 책 '산정묘지'와 이유를 묻는 대신 난로 가에 앉으라고 권하시던 교수님의 따스한 시선과 나도 모르게 치유되버린 그해 겨울의 내 시린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