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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평점 :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일상용품의 비밀스런 삶'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나타났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물건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실은 잘 모른다. 그저 'Made in ...' 세 단어로 모든 사연이 압축되어 있다.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녹색 현미경'이 되어 우리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소비하는 일상용품들이 만들어지고 쓰여지는 과정에서 사회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 보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환경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지구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나 거시적인 자연환경의 변화를 중심에 두고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책은 시선을 일상으로 가져와 커피, 신문, 티셔츠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일상용품의 소비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소소하지 않다.
지은이는 우리들의 일상용품이 지구 전체를 떠돌아다니는 산업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일상용품들이 완성되어가는 장소들을 세계지도 위에 선으로 연결해 본다면 지구는 곧 거미줄에 칭칭 감기게 될 것만 같다.
미국의 신발 회사는 신상품을 개발/디자인해서 대만의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 알려주고 대만의 그래픽 디자인 회사는 그 내용을 한국의 기술자들에게 디자인을 전송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소유 공장에서 유명 상표의 신발들이 만들어진다. 신발의 재료가 되는 가죽과 합성섬유들은 지구상에 흩어져있는 목축업과 석유화학 공업으로부터 만들어져서 인도네시아로 모여든것들이다. 목축업은 사료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단일 작물 경작과 관련이 있고, 석유화학 공업은 중남미, 중동, 북해의 유전 산업과 연결된다. 신발 포장까지 생각하면 북미의 벌목 산업과 한국의 제지 산업, 포장용 종이 가방과 상자를 만드는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까지 한 몫 거들게 된다. 지구전체를 떠돌아다니는 산업은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가 덜하고 저임금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에 공장을 둔다. 자국 노동자들의 인권에 별 관심이 없는 제3세계 나라의 정부는 다국적 기업에게 산업을 개방하고 노동자들의 소요를 잠재워 주면 된다. 우리가 신고 있는 8만 원짜리 신발을 만드는 인도네시아 공장 노동자는 일상적인 고용불안 시달리며 그 나라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500원의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다.
수년 전부터 농산물에 원산지나 생산자의 이름이 표시되어 나온다. 책을 읽고 나서 신발 하나를 사더라도 포장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상자 안에 신발과 함께 신발의 디자인, 원자재, 생산작업 등에 대해서 조금만이라도 구체적인 정보들 담은 A4 한두 장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지금껏 소비자에게 일상용품의 삶이 비밀에 부쳐져 왔을까?
지은이는 친절하게도 매 장마다 끝에서 '녹색시민'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일러준다. 정의롭게 그리고 환경에 되도록 부담을 덜 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상품을 선택해서 소비하기, 그리고 소비하되 흔적을 남기지 말 것.
그리고 삶의 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갖가지 매력적인 상품들이 소비자를 유혹해대는 사회에서 삶의 질은 구매력으로 전락해버리기 쉽다. 필요이상의 기능을 가진 유명브랜드의 상품을 필요이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수준 높은 삶으로 둔갑한다. 내 삶의 가치를 손바닥만한 지갑 안에 가둬버릴수는 없지 않은가? <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는 대안적인 소비를 통해서 '친환경적'이고 '정의'로운 삶의 가치를 가져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