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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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도 <성장>이라는 단어를 쓸 수있다면 그것은 키르케를 두고 하는 말 일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고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의 감정이 결여된 모습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절대적 힘을 가진 신들은 그들의 흥미와 과시를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 시련을 줄수록 그들에게 많은 재물을 받칠 것이며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을 즐긴다. 영겁의 삶을 사는 신에게 즐거움이란 그저 인간들의 삶 뿐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잘못된 소유욕을 같은 모습을 더 자주 엿본다. 인간의 시각에서의 키르케는 악한 마녀일지 몰라도 신들의 세계에서도 과연 그럴까?
선과 악의 구분이 오히려 더 모호한 그들의 세계에서 키르케는 바보스러워 보이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들은 유희거리가 되지만 키르케는 그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그런 존재였다.
신들의 세계의 아싸가 있다면 그는 키르케다. 삶을 살아가며 철저하게 혼자일 때가 있다. 세상의 잣대에 평가 당하고 등급의 결정되는 우리의 삶에서 키르케는 늘 현존하는 인물에 가깝다. 또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가지 모습일지도... 우리는 키르케의 삶을 통해서 우리도 모르는 관념으로 또 다른 키르케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

신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연약한 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다. 그래서 외로웠고 사랑을 갈망했다. 그리고 몇번의 사랑의 실패를 경험한다.
키르케는 섬에 고립되어있지만 더 철저하게 신들의 세계에 적응해가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무인도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 키르케의 세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더 이상 연약한 키르케는 없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자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거나 환영해줄 사람이 없었지만 그 섬을 그녀의 세계로 물들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성에게도 역사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키르케의 이야기는 영웅서사시를 닮아있다.

키르케가 바라보는 시선은 신과 인간의 중간 그 어디쯤이다. 그녀는 인간을 동물로 만드를 마법을 구사하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여신이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의 마녀 키르케는 없었을 것이다. 신이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적인 그녀에게 공감되는 이유이다.
힘들때는 키르케를 떠올려 보자. 철저하게 세상에 외면당했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낸 키르케.
키르케는 오늘날 또 다른 키르케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키르케를 만난다면 세상에 맞서는 내면의 변화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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