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존재의 근원에 대한 풀길없는 의문과 삶의 혼돈, 죽음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회색빛 사유들로 지쳐버린바 있던 나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쓰고 지나간 많은 책들과 문학과 사상과 만났지만 잠시의 포만감 후에 다시 허기진 상태로 돌아와 버리는 나에게, 교회의 건조하고 반복적인 메시지와 동화책 같은 수 많은 기독교 서적을 통해서는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에 항상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도스또예쁘스키는 굳게 닫혀있던 나의 가슴의 문을 너무나 쉽게 열어 주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수 있었던 단 한사람의 심리학자'라며 다소 자중된 니체의 찬사만 보더라도, '신은 죽었다'고 외치고 다녔던 그의 지성의 틀에 도스또예쁘스키가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을지 짐작된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영혼과 신이라는 인간 근본의 문제를 심도있게 탐구한다. 딱딱하고 난해한 실존주의적 개념들을 소설이라는 장치로 다양한 인물과 이들이 신을 찾는 과정에서 품게되는 각자의 회의에 대하여 격렬한 장면들을 우리들이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진행시킨다. 인간내면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믿는자와 무신론자간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갈등들을 각 장에 철저하게 분석하고 압축시켜 빈틈 없이 준비된 그의 입장을 표명한다. 다른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깊이 있고 철학적인 치밀한 묘사로 믿는자들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러는 동시에 어째서 모든 신학 이론이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적합하지 않은지를 설명한다. 믿는자들과 무신론자들, 양측의 이론을 팽팽히 대립시키지만 도스또예쁘스키 자신은 어떠한 개인적인 결론도 간단히 내리진 않는다. 마치 기독교의 <자유의지>를 표방하듯이 독자에게 선택권을 전적으로 돌린다.

<대심문관>장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무신론자 이반을 통해 의도되는 기독교의 기반을 흔드는 무신론자들의 압권적 논리이다. 믿는자였던 도스또예쁘스키의 이 반론이 어느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의 반론보다 더 뜨겁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나약한 인간에게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를 주었다는 자체부터 과격한 주문이었다며 시작되는 대심문관의 부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한 무신론적 표현이며, 이성의 외침이 아닌 가슴의 울림으로 다가와, 믿고 싶어도 이성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반같은 무신론자들의 가슴을 대변해 준다. 또한 스스로 동방 정교회 신도였던 도스또예쁘스키가 자신을 '바보(광신도)처럼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가르킨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더할수 없는 고뇌가 진하게 베어나며 마치 성자처럼 느껴지는 조시마 장로의 마지막 유언적 언설도 빼놓을 수 없다. '형제들이여, 인간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죄에 빠진 사람이라도 사랑하라... 그 전체와 모래 한알, 한알까지 사랑하도록 하라... 그 사물 속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범세계적인 사랑으로 온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조시마 장로가 말하는 영구적인 사랑의 핵심이며, 이반이 간과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랑의 의미인 것이다. 결국 도스또예쁘스키가 본 것은 선택의 자유가 있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책임을 지닌 영혼이었다. 조시마 장로의 드라마같은 인생에서 빚어진 그 인생관은 도스또예쁘스키 본인의 것이며, 그것은 누군가 와서 신이 진리 밖에 있음을 증명하고, 진리가 신 밖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도, 진리보다는 신편에 머물겠다는 그의 확고한 의지이다. 어떠한 사상의 아첨꾼도 영혼의 현자보다 쓸모 없다고 말해 주는듯하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고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선가 읽었던 '알면 사랑한다'는 구절같이, 무조건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하면 진정 사랑할 수도 있다는 간단한 이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는 이 한권의 책이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여러분들의 그 기나긴 행로에 튼튼한 지팡이 역할을 할 수 있음에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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