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생명, 인간 -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6
장회익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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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 다양한 학문을 `앎`의 문제로 통합하고 저마다 그 `앎`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조명한다. 신중한 접근과 서술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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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의 철학 - 자유의 토대로서의 개인주의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3
이진우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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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이라도 이해했을까 싶을만큼 어렵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내는 건 쉽지 않다. 공-사 논의가 결코 진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립 아닌 상호관계로서 공-사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마음이 불편해진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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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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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유형인데, 이런 소설의 경우 각 인물에 대한 공감을 일으키며 어느 한 사람도 악역으로 만들지 않는 멋이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인물 한민형의 분위기가 다소 바뀌는데, 그 '일'을 소설 끝에서 밝히기 전까지는 그것 자체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다. 다만 그 '일'의 전후상황을 계속 언급하면서 독자를 소설 끝까지 유인한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또 한 가지다.


가족 제도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 집필 의도 중 하나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가족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딱히 울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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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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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난 모른다.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 수많은 질문을 했었는데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중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한때는 믿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십자가를 든 어른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고 했던 것을. 한때는 믿었다. 죽음과 동시에 우리는 공포영화 속 그 귀신처럼 된다는 것을. 한때는 믿었다. 죽음 후 우리는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지금은 믿지 않는다. 10년 넘는 시간을 돌아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왔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잘 생각해보면 ‘죽다’의 뜻을 묻는 게 아니다. ‘죽다’, 즉, 죽는 행위는 살아있는 우리 역시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위다. 그것은 누워있던 늙은 어른이 유언을 말하려다 눈을 감는 것일 수도 있고, 아팠던 누군가가 병원 침대의 흰색 천으로 얼굴까지 덮이는 것일 수도 있다.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너무도 많이 봤던 장면들이다. 우리는 그걸 궁금해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죽은 상태다. 다른 사람이 보는 상태가 아니라 죽은 당사자가 느끼는 상태다. 여전히 ‘죽음’을 모른다고 답하는 나는 그 상태를 가리켜 “그런 건 없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 질문은 처음 던졌을 때 어머니께 들었던 답도 그랬다. 그 때 이 답은 내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믿지 않지만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답이 어릴 적 내게는 더 매력적인 답이었다.




셸리 케이건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궁금해 했던 그 죽음, 다시 말해 ‘죽은 상태’가 뭘까? 죽음과 동시에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우리에겐 육체 이상의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게 있다면, 영혼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앞부분은 영혼의 유무에 관련한 설명으로 채워졌다. 영혼이라는 게 있을까?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면 영혼이 존재할 거라는 가정 하에 논리를 풀어나간다. 셸리 케이건은 결국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냈다. 결론은 같지만 그의 논증 방법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의 논리는 지나치게 형이상학에 치우쳐있다. 앞에서 말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면 영혼이 존재할 거라는 가정”부터 그렇다. 우리가 ‘영혼’이라는 ‘개념’의 존재를 놓고 따지는 중이라면 위 가정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따지고 있는 ‘영혼’은 ‘개념’이 아니라 ‘실체’다. 이 경우에는 특정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영혼’이 필요한 지 아닌 지를 따지는 방법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영혼’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 케이건의 지나친 형이상학적 논리는 결국 6장에서 허점을 드러낸다. 그는 복제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다가 결국 얼버무리다시피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는데 복제라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체에 대한 해석은 철저히 실체 위에 올려야 한다. 생명을 ‘복제’하는 것은 아직 우리가 확인한 실체가 아니다. 있지도 않은 실체를 고려하다보니 ‘영혼’이라는 실체를 가져와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연주시차를 관찰하기도 전에 “우리가 지동설을 받아야 할까? 아니야, 그래도 난 천동설 할래.”식인 것이다. 복제 이후에 ‘인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영혼’의 실체를 인정할 지는 복제 이후의 현상을 보고 논할 문제다.




논증방법은 껄끄러운 면이 있지만 케이건은 결국 영혼이 없다는 가정, 즉 일원론 하에서 논리를 펴나간다. 우리가 말하는 삶의 범위 또는 죽음의 범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영혼’의 논증과정에서 그는 ‘육체’와 철저히 연결되는 ‘인격’을 이야기하는데 - 복제 논의에서 이 ‘육체’와 ‘인격’의 연결이 깨지면서 그는 ‘영혼’을 받아들여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 이 삶 또는 죽음의 범위를 논함에 있어서도 인격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이 나뉜다. 여기에서 ‘인격’을 ‘뇌’라고 생각하면 아주 편하다. 케이건은 특정인의 인격이 죽은 후에는 그의 목숨을 거두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안락사'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이 정말로 나쁜 것일까. 여기에서 케이건의 설명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죽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그는 죽음을 논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 죽음이 아니라 삶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볼 지 부정적으로 볼 지를 논하고 그 반대를 죽음에 적용하는 식의 논리다. ‘삶이 좋은 거야? 그러면 영원한 삶은 어때? 그건 싫지? 이상하지? 그러면 삶은 도대체 뭘까?’ 케이건이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안 우리 역시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진정으로 좋은 삶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책의 겉표지에 광고 문구처럼 적혀있는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진가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끝부분의 테마는 ‘자살’이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없애는 행위. 우리는 ‘자살’에 대해 흔히 “어리석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케이건 역시 이 두 가지를 짚는다. 자살은 합리적인가, 아니면 어리석은가. 도덕적인가, 아니면 비도덕적인가. 사견을 달자면 케이건의 의견과는 달리 나는 이 둘이 분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일단 ‘자살’이 비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 중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주변사람에게 슬픔을 준다는 점 하나 뿐이다. 나는 목숨 역시 자기결정권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합리성의 문제를 보자. ‘자살’이 그 자신에게는 이로운 것일까. 만약 이롭다면, 다시 말해 ‘자살’이 합리적이라면 주변사람들도 그에게 이로운 길을 존중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자살에 있어서 합리성과 도덕성은 분리되는 문제가 아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2년 전에 이 책과 제목이 아주 유사한 베스트셀러가 있었는데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이 베스트셀러를 보고 많은 지식인들은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에서 정의에 목말랐다는 말을 쏟아냈다. 2년 후 우리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어둡고 두툼한 책이 베스트셀러 탑10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고있다. 부조리한 현실 안에서 정의를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현실 안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게 아닐까. 2013년 새해의 시작은 수많은 죽음과 함께였다. 기업에 맞서 운동을 하던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었다. 다시 한 번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현실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아니,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현실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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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청춘에게 - 21권의 책에서 청춘의 답을 찾다
우석훈 외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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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부터 2박 3일간 나는 LG에서 전국의 11학번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자기계발 캠프에 다녀왔다. 꿈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하면 적절하지 싶다. <책 읽는 청춘에게>는 그 때 만났던 멘토님이 캠프가 끝난 후 추천해준 책이다. 그 캠프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 때문이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2박 3일의 캠프를 복습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대학생 7명의 공동저서다. '책꽂이'라는 독서모임을 하는 7명의 대학생이 각각 3명의 멘토를 찾아가 책을 추천받고 그들의 20대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처음엔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다. 사실 이건 모든 자기계발 서적의 공통점이다. 책이 내게 던지는 조언들에 나를 비교해보며 내 부족함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전정신이 부족한 내가 '도전'에 관한 글을 앞부분에 가져다 놓은 책을 읽었으니 불편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을거다.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이 책 역시 열정을 가지라고 말하고, 좋아하는 것을 좇으라고 말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말한다. 책이 시키는대로만 따라가면 드라마 주인공이 될 기세다. 많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다만 그 점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효과도 있다. 불편한만큼 나는 열정을 가지지도 못했고, 좋아하는 것을 좇지도 않았으며, 현실에 안주했던 거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순수하게 열정만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 따라갔다면 내가 지금 내 전공을 선택할 리가 있었을까. 내 전공은 내 열정을 버려가며 철저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나치게 소심하지는 않았을까. 지금도 마찬가지는 아닌가. 최근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다.




22명의 멘토(저자 중 한 명인 윤은지 씨가 부부여행가 최미선 씨와 신석교 씨를 인터뷰했기 때문에 멘토는 21명이 아닌 22명이다) 중에는 원래부터 들어서 알던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배우도 있고, 언론인도 있고(홍세화 씨는 지금 진보정당의 대표가 되었지만), 감독이 있는가 하면, 부부여행가도 있다(처음 들었다..). 사람이 다양한 만큼 조언도, 조언하는 느낌도 사뭇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책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 말고도 이들은 인문학을 강조한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아주 미약하게나마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적게나마 책을 지속적으로 읽는다는 점에서 이거 하나만큼은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20대에게 던지는 조언들은 여타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좀 부드럽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의 자기계발서는 성공한 개인이 대중을 상대로 이러이러한 것을 하라고 조언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다르다. 조언이 필요한 20대가 직접 멘토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의 새로운 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좀 더 재미있고,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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