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 정호승 / 열림원 -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것이 무슨 뜻일까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것, 그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여기서는 슬펐을까, 외로웠을까, 자꾸만 내가 그가 되어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시에게서 더 멀어지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전 시집 하나를 고르면 조금 방치한답니다.
내 마음에 여백이 없으면 자꾸 그의 말에 물음표를 달기 때문인데요, 그 물음표는 그의 말을 위축되게 하고 그의 감정을 어딘가에 자꾸 담으려고 하거든요.
저도 시집 하나를 펼쳐서 하나 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상상도 하고 같이 느끼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시인이 된 것처럼 늘어놓게 되었는데 의외로 내가 말하는 것들을 알아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답니다.
물론 시인이 아니니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이유가 컸겠지요?^^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시라는 영역의 무한한 자유였습니다.
풀어내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읊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다가서는 사람의 시선이 어떤지에 따라 또 무한하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고 나니 내가 읊어대는 노래들도 가벼워지고 누군가 노래하는 것을 듣는 것도 바람을 흘려보내듯 들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런 방법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시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의 시를 설명하고 있는 뒷부분은 거의 읽지 않거나 아주 아주 나중에 읽어 봅니다.
혹여 시인의 방에서 느꼈던 나만의 감정들이 또 다른 자로 재단되는 것이 싫어서이지요.
어쩌면 이것은 시의 단편적인 얼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라고 하면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마음들을 어느 정도는 옅게 해주지 않을까요..^^

이 시집은 세상에 나온지 10년도 훨씬 넘은 시집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시들이 가득한 걸로 봐서 그 당시엔 더 많은 사랑을 받았겠구나 짐작을 합니다.
펼쳐 보니 힘들고 외로웠던 어느 해 겨울에 만난 '봄길'도 있어서 더 반가웠답니다.
잠깐 들려드릴까요?^^

<봄길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전 이 시집을 보면서 그의 말중에 '별'과 '칼'을 조금 더 생각했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면서도 외로움과 고독이 물씬 느껴지는 시들도 많구요, 그럼에도 다시 그 애정으로 걸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의 시는 산문적이어서 더 편합니다.
이것은 내 성향이기도 한데, 의도적인 운율을 꺼리는 내게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운율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시들이 좋습니다.
수시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도 낯설지 않구요, 눈물에 젖어 있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정이 갑니다.
좋아하는 시인의 좋은 시집을 조금 방치하다가 만났습니다.
읽지 않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들여다 보며 물끄러미 그의 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도 듣고 조근조근 따뜻한 그의 독백도 들렸습니다.
그는 일어나 그의 길을 떠나고, 난 남아서 조금 더 하늘을 쳐다봅니다.
시가 그런 것 아닐까요..
그렇게 걸어가는 시인과 남아 있는 나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을 만나는 것..
딱히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잘 살겠지 하고 고개 끄덕이는 날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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