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지워졌다고 형식까지 없어지게 둬서는 안 돼. 형식에 새겨진 의미는 언젠가 반드시되살아나는 법이니까. - P42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P168
인간의 기억은 어디에 깃드는 것일까. 뇌의 시냅스 배선 패턴 그 자체일까. 안구나 손가락에도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개처럼 형태가 없는, 보이지 않는 정신의 덩어리가 어딘가에 있어서 그것이 기억을 간직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든가 정신이라든가 혼이라고 불리는 것들. OS가 들어간 메모리카드처럼 그것은 빼낼 수 있는 것일까. - P207
슬픔도, 사랑스러움도 모두 사라져간다. 내가 왜 울고 있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모래성을 허물 듯이 감정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모래성이 다 허물어진 후에는 사라지지 않는 덩어리가 하나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바로 아쉬움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순간에 나는 깨닫는다. 앞으로 내게 남는 것은 이 감정뿐이라는 것을, 누군가 억지로 맡긴 짐처럼 나는 아쉬움만을 떠안는다는 것을, - P232
그래도, 나는 지금 발버둥 치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생에 발버둥 치고 있다. 예전에 내가 결심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발버둥 치는 것. 살아가는 것. 숨을 쉬고 걷는 것. 달리는 것. 먹는 것. 맺는 것.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을의 풍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듯, 어디에나 있을 법하게 살아가는 것. - P278
나는 내 바람을 겨우 깨달았다.
아주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다. 정말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다. - P281
그래도 나는 결국 이 소설을 썼다. 어느 순간부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어딘가에 타키나 미츠하와 같은 소년소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이야기는 물론 판타지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그들과 비슷한 경험과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다. 소중한 사람이나 장소를 잃고 말았지만 발버둥 치자고 결심한 사람. 그리고 그런 마음은 영화의 화려함과는 다른 절실함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느꼈기에 나는 이 책을 썼다. - P289
인간에게 가장 잔혹한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죽음이다.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보다 잔혹한 것이 있다. 바로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가는 것이다. - P294
사람은 소중한 것을 잊어간다. 하지만 그것을 거역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삶을 살아 나간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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