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둥켜안고 있는 이 삶의 모습이 실은 대부분 의도치 않았던 우연과 가볍게 내린 선택에 의해 결정됐을 가능성을. - P12
사람들은 긴 글을 읽기 싫어한다. ‘누가 요약 좀’이라거나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긴다. 쓰는 인간들과 그들의 매체는 그렇게 점점 자리를 잃어간다. - P40
말하고 듣는 인간이 받아들이는 정보에는 언어 외에도 다양한 ‘소음‘이 섞인다. 말하고 듣기에서는 때로 상대가 입으로 내뱉은 언어 정보보다 그런 소음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목소리, 말투, 표정, 시선, 몸짓, 자세, 외모, 거리와 같은 것들이다.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를 이용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읽고 쓰기보다는 말하고 듣기에 가깝다고 여기고, 그런 비언어적 정보가 없으면 어색해한다. 그래서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 P41
실은 감정과 욕망이야말로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실리는 주된 메시지다. 우리가 상대의 눈빛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는 그의 감정 상태와 진짜로 원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다. - P42
요즘의 정치 운동, 사회 운동들은 철학 대신 열광을 연료로 삼는다. 현대사회는 이런 식으로 동물화하는 것 같다. - P42
언어를 기록하는 일에 매달리는 인간에게 비언어적인 소통은 중요하지않다. 그런 것들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다가 흩어지고 만다. 10년, 20년의 세월을 견디고 남는 것은 기록된 글자뿐이다. - P48
더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 P48
나는 성실히 읽고 쓰는 사람은 이중 잣대를 버리면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반성하는 인간, 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는 약간 무겁고, 얼마간 쌀쌀맞은, 진지한 인간이 될 것이다. - P49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예의와 윤리는 다르다.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나에게 옳은 것이 너에게도 옳은 것이어야 하며, 그때 옳았던 것은 지금도 옳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괜찮은 것이 너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고, 한 장소에서는 문제없는 일이 다른 시공간에서는 모욕이 될 수도 있다. - P54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 P55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논란의 상당수는 예의와 윤리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예의와 윤리는 폭력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수단이다. 이 두 덕성은 서로 겹치지 않으며, 맥락과 상황의 문제(예의)를 보편적인 법칙(윤리)으로 만들고자 할 때 종종 충돌이 발생한다. - P56
나는 읽고 쓰듯이 말하고 들으려 하는 인간이었다. 텍스트라고 부르는 언어 기호에는 남들보다 훨씬 더 집중하면서, 비언어적 신호와 맥락으로 소통하는 법에는 무지했다. - P60
마흔세 살 장강명은 매사가 무의미한 듯한 허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그래서 나는 책에 집착한다. 읽고 쓸 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할 감각의 세계를 떠나 의미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 P71
좋은 질문도 좋은 문장처럼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고,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본다. - P91
책은 고집스럽게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한다. - P100
나는 책에서 글이 아닌 것에 대한 애정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책의 변질에 저항하고 싶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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