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우리들에겐 늘 외로운 마음이 항상 더 가깝다. 좀 쓸쓸하지만 위로라는 건 어떤 찰나, 한 줄의 문장, 혹은 많지 않은 몇 컷의 이미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이상은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철벅철벅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타인이 주는 위로라는 건 그와 내가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상태의 일치가 일어날 때 또는 허황되게도 일치가 일어났다고 상상에 빠졌을 때만 가능할 뿐이다. 어쩌면 위로라는 감정 혹은 행위는일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다가 아주 가끔 창문을 열면 만나는 저쪽 세계에 속하는 시원한 바람 같은 위로와 함께 일상은 냉정하거나 권태롭게 천천히 척척척 레일 위를 그저 달려간다. 그 창문은 조금 있다가 다시 닫아야 한다. - P186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사실 거의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에 내내 갖고 있었던 어떤 이야기를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면 펼치게 되는데 그것을 잘 알아주는 대화 상대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P325
대체로 바빠진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어진다. 그럴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 사람과 만나 대화를 통해 얻고 싶은 것만을 얻어 가고 싶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여 서로의 이야기에 상충됨이 없이 스르르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일 수 있는 사람만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간의 여러 경험을 통해 불편해질 것이 예견되는 만남은 피하게 된다. 그러니 점점 더 만날 상대가 적어지고 대화라는 것도 피상적이 될 뿐이다. 진지한 대화는 서로에게 갖는 호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상대를 좋아하거나 궁금해하거나 해야 한다. 좋아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상대에게 어떤 반복 구간을 들어야 한다면 고문이 따로 없을 것이다. - P325
그가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리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커플을 이루어 살고 있는 자에게 커플을 이루어 살고 있는 거 대단하다. 힘들지 않느냐, 라고 묻지 않듯이 역으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상대에게 노골적으로 뾰족해지는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어찌 살아도 힘든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르게 사는 사람을 소수자 취급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도 뭐 그다지 생각보다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다. - P314
점점 나는 비참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대체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참고로 난 독신주의자, 비혼주의자 등 무슨 주의자 그런 거 아니다. 그저 결혼을 못했을 뿐이고, 못한 결혼에 대해서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일 뿐.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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