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기행 - 예의 길을 가다
김병종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페이퍼백 외서를 구입하면 비닐 커버를 싸는 편이고 국내 도서는 표지가 비교적 튼튼해서 비닐을 씌우지 않는다. 그런데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구입하자마자 바로 비닐로 겉을 쌌다. 표지가 약해서였냐? 아니다. 그만큼 아껴가면서 읽고 싶었다. 고급스러운 종이, 다양한 인물, 그림과 사진 자료들이 날 기쁘게 했고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김병종님의 글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흥분이 되었다. 전에 한때 조선일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김병종님의 글을 몇 번 읽었었다. 참 글이 맛깔스럽게 쓰여졌다라고 감탄을 했었는데 그 글들이 묶여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무척이나 읽고 싶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맘에 들었던 건 소개된 인물들의 다양함이다. 우리가 흔히 알던 작가나 화가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가수를 포함해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숨겨진 보물같은 예인들의 이야기도 펼쳐졌다. 특히, 동춘 서커스단 단장인 박세환과 시대를 앞서 살아간 김명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중 김명순은 같은 여자여서 그런지 나의 관심을 더 끌었다. 매일신보 기자를 지내고 소설을 썼던 똑똑했던 그녀가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져 이제 그 흔적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가슴이 아팠고 그녀를 모델로 썼다는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전'을 직접 구해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 당시엔 김명순의 행동들이 낯설고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현재 그녀에 대해 남아있는 게 없다니...김병종님 말대로 정말 맥이 풀린다.

'화첩기행'은 인물의 일생을 단순히 시간순으로 나열한 게 아니라, 생애와 남긴 작품과 인물이 있던 곳을 찾아가 느낀 작자의 감성, 그리고 작자의 그림이 어우러져 있어 한 편 한 편 근사한 시나 소설, 수필을 대하는 느낌이다. 1편을 읽으면서 느낌이 좋아 읽는 도중에 2편을 구입했는데 2편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는다. 금붙이를 잃어버리면 어른들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금이 숨어 있다고...금이 한 번 숨어버리면 찾기 힘들다고...그런 금쪽같은 예인들이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숨었다기보다는 우리가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훗날 우리는 그 흔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할 것이다.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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