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 든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70이라는 나이에 쓴 소설 답지 않게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은 우선 힘차고 감각적이었다. 고루할 거라는 내 예상을 완전히 깼다.
그러나 소설은 힘차게 출발은 했으나 끝이 개운치 못했다. 주인공 영빈과 그의 식구들, 초등 동창 현금과 한광, 영빈 여동생 영묘의 시댁 식구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소 뒤틀려서 묘사가 돼 있다. 돈과 권력에 벌벌 떠는 영묘의 시댁 식구들, 몸은 살아 있으나 어쩔 수 없이 시집에 휘둘리는 영묘, 마흔 넘어서도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아내, 장남으로서의 의무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형, 틀에 박힌 삶을 살다가 우연히 만난 동창생과 '나쁜짓'을 저지르는 주인공 영빈...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우울하게 묘사해 놓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영빈의 초등 동창생 현금이 가장 솔직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첨엔 너무 도발적이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가장 자유롭고 편하게 사는 그녀가 맘에 들었다. 한때 돈에 얽매여서 살긴 했지만, 이젠 모든 것에 초월해서 살아가는 것 같다. 결국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런 면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면서 끝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했는데, 영빈의 형이 슈퍼맨처럼 나타나 후다닥 해치우고.. 그것도 영빈 모르게 뒤에서 관심 없는 척 있다가 -사실상 거의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결말에 맥이 풀렸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박완서의 입담에 놀라워 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었지만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별로 깔끔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 속의 모습이 진짜 현실일지라도, 그게 사람들의 속내 일지라도 왠지 자꾸만 거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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