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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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인 주인공이 인정의 세계를 떠나 비인정의 세계로 들어가 시와 그림, 예술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루는 소설로,

커다란 줄거리는 없지만 주인공의 눈에 비치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화자의 심리를 그려낸다.

비록 이 책은 기행문이 아닌 소설이지만, 소세키님의 문장 하나하나에 빨려들어 가듯이 읽어내려간 탓에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비인정의 세계에 한번 다녀온 듯한 느낌이다.

 

기행문 같은 느낌의 이 소설을 읽어서일까?

아니면 요근래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나서일까?

한동안 잠잠했던 내 병이 다시 도진 것 같다.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은 병.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돈은 다녀와서 벌자, 지금, 우리 젊을 때 가는 거야. 하고. 

직장도, 결혼도, 적금도 정리해버리고 그냥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 책의 주인공처럼 풀을 베개삼아 자연을 느끼고, 시를 감상하고, 그림을 찾아다니며

사람 사는 세상 어디든 두 눈에 담고서 그냥 온전히 흘러가는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나 아직 어린데.

일이년쯤 다녀와도 늦지 않은 듯한데.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나이가 더 들고 혼자가 아닌 몸이 되면 용기가 더 없어져서 후회할 것 같은데.

그때 갈걸.

지금. 바로 그 때.

고민할 때...

 

 

  

p.15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p.16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p.16

 이 세상에 살게 된 지 20년이 되어서야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임을 알았다. 25년이 되어서야 명암이 표리인 것처럼 해가 드는 곳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를 분리하려고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치워버리려고 하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돈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이 늘어나면 잠자는 동안에도 걱정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기쁘다. 기쁜 사랑이 쌓이면 사랑을 하지 않던 옛날이 오히려 그리워질 것이다. 각료의 어깨는 수백만 명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다. 등에는 무거운 천하가 업혀 있다. 맛있는 것도 먹지 못하면 분하다. 조금 먹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마음껏 먹으면 그 다음이 불쾌하다.

  

p.164

나는 화공이다. 화공이기에 취미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로서 설사 인정 세계에 타락했다 하더라도 동서 양쪽의 풍류를 모르는 속된 사람들보다는 고상하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능히 남을 교육할 만한 위치에 있다. 시가 없는 자, 그림이 없는 자, 예술 취미가 없는 자보다는 아름다운 행동을 할 수 있다. 인정 세계에서 아름다운 행동은 정(正)이고 의(義)이고 직(直)이다. 정과 의와 직을 행위로 보여주는 것은 천하 공민의 모범이다. 

 

잠시 인정 세계를 떠난 나는, 적어도 이 여행 중에는 인정 세계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그럴 필요가 있다면 모처럼의 여행도 쓸모없게 된다. 인정 세계에서 사각거리는 모래를 털고 밑에 남은 아름다운 금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나 스스로도 사회의 일원으로 임해야 한다. 순수한 전문 화가로서 나 자신까지 연루된 이해의 속박을 끊고 고상하게 캔버스 안을 왕래하고 있다. 하물며 산이나 물이나 타인에 있어서랴.

 

***낭만다람쥐의♥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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