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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에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아버지의 이야기' 라는 대략적인 줄거리만 들어본지라
굉장히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의 책인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 많이 달랐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해학적으로 그려놓은 작가님의 필력때문인건지
분명 슬퍼야 할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고,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그리 무겁지만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웃음 뒤에 가려진 먹먹한 마음 때문인지 어울리지 않는 묘한 두 감정들이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따라다녔다.
허삼관은 가족을 위해 피를 팔아 생활고를 이겨낸 1950년대 중국 깡촌에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자신의 피를 판 이유는 장가를 가기 위해서였으나 (피를 팔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하나의 상징이었으므로),
나중에는 가뭄 속 가족들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3달에 1번씩 팔수 있는 피를, 1달만에 4번이나 팔고서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중반부정도까지 읽었을 때는 피를 파는 이유가 그다지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후반부에 갈수록 느껴지는 절실함에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판다.'는 이런 단순한 이야기가 어쩜 이리도 가슴 먹먹하게 만들 수 있는건지...
내년에, 이 책이 영화화 되어 나온다고 한다.
주인공은 하정우라고 하던데,
과연 하정우가 표현하는 허삼관은 어떤 모습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지금의 이 여운이 영화에서도 느껴질 수 있을런지...
근데, 혹시나 반전을 위해서 영화에서는 결말을 바꿔버리는 건 아니겠지?
만약 결말을 바꾼다면.. 굉장히 슬퍼질지도 모르는데... ㅠㅠ

p.191~192
"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은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 테니……."
승리반점의 환한 불빛이 보이자 일락이가 허삼관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관은 문득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p.205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둬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 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낭만다람쥐의♥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