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떻게 만들 것인가 - 표민수 감독의 드라마 제작론
표민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노래가 유행했던 당시가 생각나듯이,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될 때에도 이전에 그 영화나 드라마를 봤을 당시의 상황이나 느낌이 또렷하게 생각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드라마 하나를 꼽아보자면,

2008년도에 방영되었던 현빈, 송혜교 주연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면

내가 처음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낯선 두려움과 밤낮이 뒤바뀐 생활로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았었던 상황들이 떠오른다.

그 당시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TV는커녕 책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날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친한 친구가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꼭 보라고 추천해줘서 그렇게 나는 이 드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껏 보아왔던 대부분의 드라마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시청했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의 사는 세상>을 보는 동안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보다는 연출가라는 그들의 직업과 삶이 더 눈에 들어왔다.

그건 아마도 24시간 빠듯하게 돌아가는 나의 병원 생활과 24시간 빠듯하게 돌아가는 드라마국의 생활이 묘하게도 닮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삶의 위안을 얻었는지 모른다.

'아... 나만 이렇게 몸이 망가지도록 힘들게 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나만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 두 눈 뜨고 일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을 보면서 좀 더 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보자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다행히 운 좋게 교대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부서로 옮겨져서 그때의 힘들었던 생활은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도 생각날 때면 반복해서 보고 있을 만큼 나의 베스트 드라마로 꼽는 작품이 되었다.

이 드라마가 좋아서 이 드라마를 쓴 노희경 작가님의 에세이 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도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지내왔는데

이번에 이 드라마를 연출한 표민수 님이 책을 내셨다고 하니 당연히 내가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민수 님을 먼저 소개하자면 마니아 드라마의 시초라 불리는 <거짓말>을 시작으로 <슬픈 유혹>, <바보같은 사랑>, <푸른 안개>, <고독>, <풀하우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그들이 사는 세상>, <커피 하우스>, <넌 내게 반했어>, <아이리스 2>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한 드라마 연출자이다.

드라마를 많이 챙겨 보지 않는 나는 이 중에서 <풀 하우스>와 <그들이 사는 세상> 밖에 본 작품이 없지만,

이 두 작품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연출을 해왔는지는 전 작품을 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일반인들을 위해서 쓰여졌다기보다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연출가로서, 작가로서, 혹은 배우로서 일하고 싶은 지망생들에게 드라마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총 8챕터로 나누어 먼저 드라마 기획을 시작으로 - 제작과 투자 - 작가 - 연출 - 연기 - 편집 - 음악과 음향 - 믹싱(종합편집) 작업에 대해서 세세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살려서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기초적인 용어 설명까지 주석으로 덧붙여 드라마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더욱 알기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써놓았다. 표민수 연출가님의 경험담이 담긴 예를 읽을 때,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는 나의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이미 보았던 드라마를 예로 들 때는 그때 그 장면이 생각이 나서 참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8챕터를 모두 읽다 보면 모든 챕터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공통된 주제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없으며, 인간에 대한 얘기가 드라마의 시작이고, 연출의 시작이며, 연기의 시작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대하는 시청자들은 많은 공감을 얻고, 위안을 얻으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러한 그의 지론에 근거한 많은 뛰어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처음 병원 출근을 앞두고 병원 생활이 막막하여 <간호사, 프로를 꿈꿔라> 라든지,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책들을 뒤적거리며 미리 병원생활을 엿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듯이,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작가나 연출가, 배우 지망생들이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테니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