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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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나, 어떤 행동을 취할 때 너무 뻔해서 실수 없이 완벽할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씩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혼자 고민해봐도 무엇이 잘못된 건지 도무지 감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들은 어이없게도 너무나 쉽게 오류를 발견해주곤 한다.
반대로, 남들 눈에 감지되지 않는 실수들이 내 눈에는 훤하게 보일 때도 있다. 
이렇듯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남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시야의 폭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른 세상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과 동물이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인간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동물의 눈에는 신천지로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에게는 엄청나게 느껴지는 일들이 동물에게는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아무것도 모를 줄 알고 막대하기만 했던 동물들이 어쩌면 우리보다 더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바로 여기, 인간이 아닌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며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고양이는 세상에 태어나 갑작스레 어미와 형제들과 이별한 채 길바닥에 버려지게 되는데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찾은 어느 영어 선생의 집에 안착하게 되면서 그곳의 풍경들을 시시콜콜 관찰해나간다.
고양이가 안착한 집의 주인인 구샤미는 밖에 나가는 걸 귀찮아하며 오로지 서재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남들은 그가 대단한 면학가인 줄 알지만 실상은 책 한 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잠에 빠져버리고 마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집에는 소위 말하는 한량 같은 이들이 자주 찾아오는데,
대표적으로 허풍선이에 거짓말을 참말처럼 해대며 주위 사람들을 놀리는 것을 일삼는 메이테이 선생과
'목매닮의 역학'이라는 제목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가 하면,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는 엉뚱한 주제의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간게쓰 군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의 근대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을 상징하는 인물들로써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자존심만을 내세우며, 허례허식을 일삼는 모습들을 대변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갑작스레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맞닥뜨렸던 사상과 가치관의 혼란에 휩싸인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면서
그 당시의 일본 세태를 꼬집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1905년에 처음 쓰여진 나쓰메 소세키님의 처녀작으로,
처음부터 이렇게나 두꺼운 소설을 쓰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잡지에 1편을 기고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11편까지 연장된 것을 장편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설 답지 않은 부분이 여럿 발견되는데,
우선 줄거리라고 딱히 내세울 만한 큰 줄기가 없다.

그리고 초반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버릴 때가 있는가 하면,

맥락 없이 뒷부분에 등장해버리는 인물도 있다.
또한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기에 그들의 생각까지는 읽을 수 없다고 해놓고
어느 순간 인간들의 생각을 읽고 있는 부분도 나타났다가
나중에는 다시 고양이 주제에 주인의 심중을 어떻게 이렇게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고양이에게는 이런 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며, 심지어 나는 독심술을 터득한 고양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약 3년 전에 문학사상사에서 나왔던 유유정 번역의 책을 읽었을 때는 다소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할 뿐 이토록 재밌지가 않았었다.

그랬던 이 고양이가 지금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이 책이 이러한 양식에서 출발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난 뒤에 다시 접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유유정 번역가과 김난주 번역가님의 차이 때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마음>을 읽고서 나쓰메 소세키님에게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혀, 이전과 달리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어서인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몇 년 만에 다시 만나 본 고양이 이야기는 예전과 다르게 조금 더 신선했고, 조금 더 재밌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이 고양이를 만났을 때는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지,

생각날 때면 이따금씩 아무장을 펴놓고 또 한 번 읽어보아야 겠다.

 

 

 

 p.443

 늘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 보면 어디에선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낭만다람쥐의♥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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