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귀엽게 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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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울트라마린:가장 값비싼 예술물감

화가들이 사용하는 울트라마린은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값비싼 색이다.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물감의 애호가들을 위해서 진짜 울트라마린이 생산되고 있는데 최고의 품질은 kg당 가격이 1500만원에 달한다.

울트라마린은 준보석에 해당하는 청금석(라피즈 라즈리)으로 만든다. 청금석은 불투명하고 짙은 파랑에 하얀줄이 나있고 황금빛 조각이 섞여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금빛 조각을 황금이라 생각했다. 청금석은 금광이나 은광에서 발견되어 그 조각이 황금처럼 광채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 황금’이라고 불리는 황철이다.

울트라마린은 바다 건너편이란 뜻으로 청금석의 원산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금석이 인도양, 카스피해, 흑해의 건너편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예술사에서 가장 고귀한 울트라마린은 베리 공작을 위해 그린 세밀화 ‘베리 공작의 매우 고귀한 시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피지에 수용성 도료로 그린 이 시리즈화는 책으로 제본되었는데 1410년경 랭브르 출신의 세형제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릴 때 언제나 울트라 마린을 사용했다. 울트라마린은 그들의 그림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그림이 사치품이기 때문이었다.

1834년 울트라마린이 처음으로 화학적으로 생산되었다. 화학적인 울트라마린은 오늘날 품질에 따라서 kg당 1만-3만원의 가격으로 판매된다. 이제는 준보석인 청금석도 인공적으로 생산된다.

파란색을 만들기 위해 예전에 많이 쓴 또 다른 색소로 아추리트Azurit가 있다. 아추리트로 파란 돌에서 얻는다. 하지만 아추리트는 울트라마린처럼 빛나지 않으며 값도 비싸지 않지만 이제는 역사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1775년 코발트 블루라는 이름의 새로운 파랑이 생산되었다. 코발트 블루는 코발트 광석에서 얻은다. 코발트라는 이름은 Kobold(요정)에서 유래한다. 캄캄한 탄광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코발트가 꼭 요정의 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코발트 블루는 붉은 빛이 약간 도는 매우 강렬한 톤의 파랑이다. 반고흐는 코발트 블루를 신성한 파랑으로 만들었다.

파랑은 회화에서 가장 고귀하고 상징학에서도 신성한 색이지만, 옷에는 흔하게 사용되었다. 1570년 교황 피우스5세는 제례때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입는 옷과 제대보, 그리고 강독대 장식에서 사용되는 색을 정하면서 교회에서 파랑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파랑이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섬유염색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고Indigo가 범인이었다. 인디고는 언제나 싸구려 색이었다. 인디고는 색이 흐릴뿐만 아니라 햇빛에 약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역사적인 색의 애호가들은 오늘날까지도 진짜 인디고로 만든 수채화 물감을 사용한다. 하지만 색 전문가들은 인디고의 파랑이 빛에 약하기 때문에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인디고 블루라고 판매되는 것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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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날 귀찮게 하지마!

마우스를 얼굴에 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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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웃겨여~~ㅋㅋㅋ

01. 이상하다.
어젯밤에 방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화장실 가기가 귀찮아서
맥주병에 오줌을 쌌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두 빈병들 뿐이다.
도대체 오줌이 어디로 갔지?

02. 친구들과 술 마시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이불 속에 들어가는데 마누라가
"당신이에여?" 라고 묻더라.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님 딴 놈이 있는 걸까?

03. 이제 곧 이사해야 하는데
집주인이란 작자가 와서는
3년 전 우리가 이사오던 때같이
원상대로 회복시켜 놓고 가라니,
그 많은 바퀴벌레들을 도대체 어디 가서 구하지?

04. '나 원 참!'이 맞는 것일까?
'원 참 나!'가 맞는 말일까?
어휴 대학까지 다녀놓고 이 정도도 모르고 있으니
'참 나 원!'

05. 어떤 씨름 선수는 힘이 쎄지라고
쇠고기만 먹는다는데 왜 나는 그렇게
물고기 많이 먹는데 수영을 못할까?

06. 오랜만에 레스토랑에 가서 돈까스를 먹다가 
콧잔등이 가려워 스푼으로 긁었다. 
그랬더니 마누라가 그게 무슨 짓이냐며 나무랐다. 
그럼 포크나 나이프로 긁으라는 걸까? 

07. 물고기의 아이큐는 0.7이라는데, 
그런 물고기를 놓치는 낚시꾼들은 
아이큐가 얼마일까? 

08. 우리 마누라는 온갖 정성을 들여 
눈 화장을 하더니 
갑자기 썬그라스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09. 왜 하필 물가가 제일 비싼 시기에 
명절을 만들어서 우리 같은 서민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걸까? 

10. 공중변소에는 온통 신사용과 숙녀용으로만 
구분해 놓았으니 도대체 나 같은 건달이나 
아이들은 어디서 일을 봐야 하는가?
11. 짐승만도 못한 놈과 짐승 보다 더한 놈! 
도대체 어느 놈이 더 나쁠까? 

12. 참으로 조물주는 신통방통하다. 
어떻게 인간들이 안경을 만들어 걸 줄 알고 
귀를 거기다가 달아놓았지? 

13. 대문 앞에다 크게 '개 조심'이라고 써놓은 
사람의 마음은 조심하라는 선한 마음일까? 
물려도 책임 못 진다는 고약한 마음일까? 

14. 법조인들끼리 소송이 걸렸다면 아무래도 
경험이 풍부한 범죄자들이 심판하는게 공정하겠죠? 

15. 하루밖에 못 산다는 하루살이들은 
도대체 밤이 되면 잠을 잘까? 죽을까? 
 
16.'소변금지'라고 써놓고 
그 옆에 커다란 가위가 그려져 있다. 
그럼 여기는 여자들만 볼일 보는 곳일까? 
아니면 일을 보면 거기가 잘린다는 뜻일까? 

17. 언제나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통반장 다 해먹으라고 하더니 
왜 통장 한번 시켜달라는데 
저렇게 안된다고 난리일까? 

18. 고래나 상어들도 참치를 먹는다는데, 
도대체 그 녀석들은 어떻게 통조림을 따는 것일까? 

19. 사귄 지 얼마 안된 그녀와 기차여행을 하는데 
'터널이 이렇게 길 줄 알았다면 
눈 딱 감고 키스해 보는 건데'하고 후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에 기대면서 
"어머 자기 그렇게 대담할 줄이야, 
나 자기 사랑 할 것 같애"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어떤 놈일까? 

20.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냐는 주례선생님! 
도대체 대머리인 나에게 뭘 어쩌라고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21. 70대 남편과 사별한 30대 미망인은 슬플까? 기쁠까? 

22.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했더니 
입술을 도둑 맞았다고 흘겨본다. 
다시 입술을 돌려주고 싶은데 순순히 받아줄까? 

23. 비싼 돈주고 술을 마신 사람이 
왜 자기가 먹은 것들을 확인해 보려고 
저렇게 웩웩 기리며 애쓰고 있는 것일까? 

24. 화장실 벽에 낙서 금지라고 써있는 것은 낙서일까? 아닐까? 

25. 낙서금지라... 그림은 그려도 된다는 것일까? 
 
26. 대중목욕탕을 혼탕으로 만들자는 말에 
남자들은 큰소리로 찬성하고 여자들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찬성한다는데, 혼탕이 생기면 남자들이 많이 찾을까? 
여자들이 많이 찾을까? 

27. 요즘 속셈 학원이 많이 생겼는데 
도대체 뭘 가르치겠다는 속셈일까? 

28. 피임약 광고 모델은 처녀일까? 
유부녀일까? 

29. 가난한 청춘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 
배가 고파서 중국집에 들어갔다. 
남자가 '짜장면 먹을래?"라고 묻는다면 
짜장면을 먹으라는 애원일까? 
다른 것도 괜찮다는 말일까? 

30.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흔적을 남길까? 
아님 걍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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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트로츠키의 유언장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다시 읽는 명문장, 명구절 - 트로츠키의 유언장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여러분들은 아마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가 감독·주연한 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를 기억하실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유태인 귀도 가족이 겪어야 했던 유태인 강제수용소의 끔찍한 현실을 배경으로 살아남은 어린이를 통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희망을 그린 영화였지요. T.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지만 로베르토 베니니는 나치 치하의 유태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유머와 휴머니티가 넘치는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모티브가 된 것은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가 암살당하기 직전에 기록한 유언장 말미에 나오는 "인생은 아름답다"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오늘의 <유리병편지 /다시 읽는 명문장, 명구절>은 트로츠키의 유언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미완의 혁명으로 종결되고 만 러시아 10월 혁명의 혁명가이자 그 혁명의 종착역을 미리 예언했던 사상가 레온 트로츠키. 그의 이름 뒤에는 수많은 수식어와 함께 그칠 줄 모르는 논쟁의 회오리가 따라붙습니다. 본명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Leib(Lev) Davidovich Bronstein). 남우크라이나의 비교적 부농을 이룬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오데사대학에 입학한 뒤부터 마르크스주의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1898년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1902년 탈주하여 영국으로 망명한 뒤 V.I.레닌에 협력하기도 했으나 초기에는 멘셰비키에 가담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종종 레닌과 당의 주요 노선을 따르지 않는 이단아가 되었습니다.

그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러시아 10월 혁명을 거쳐 적백내전이 극에 달하며 치른 무장봉기 때였습니다. 이때 트로츠키의 놀라운 활동은 레닌조차도“단 1년만에 거의 완벽한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보여달라”고 할 정도였으며, 악쇼노프는 그의 단편 <디코이>에서 탈주병들이 혁명을 야유하며 소란을 피우다가 그의 선동 연설을 듣고는 만세를 부르며 적위대(Red Army)에 참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투의 중요한 국면에서 그가 나타하면 “그것은 곧 1개 사단이 새로 도착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역사가들이 기록할 정도였으니 선전선동술을 포함한 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가를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독일어 트로츠(trotz: 반항, 완고, 고집, 과감, 기민의 뜻)를 자신의 가명으로 쓴 것처럼 시시때때로 자신의 반항적이고 완고한 일면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의 단독강화문제를 놓고 레닌과 대립하여 사직하고, 당의 주요 노선과 대립하기 일쑤였습니다. 그에 대한 공과를 평가하는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들이 주로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대표할 수 없는 개인적 단위”혹은‘방관자’, 견딜 수 없는 ‘지적 우월성’의 소유자, ‘당의 아웃사이더’라는 식의 개인주의로 치부되었고, 레닌조차도 그를 ‘뻥쟁이’,‘허리가 반쯤 구부러진 신학교의 수학자나 다름없는 수다꾼’,‘악덕 변호사’등으로 야유했었다는 군요.

그러나 현재에 와서 그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악의적인 부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05년이래 트로츠키의 주요 주장은‘영구혁명론Permanent Revolution)’의 가지에서 뻗어나온 것이었습니다. 영구혁명론을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부르주아지'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농민이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데 반해 트로츠키는 근대 사회에서는 도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직 도시 계급만이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혁명적 부르주아지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트로츠키의 주장은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도시의 생성과 산업혁명이 미흡했던)에서 벌어진 혁명을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계급으로서의 근대적 프롤레타리아가 러시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오직 노동계급만이 러시아 혁명에서 지도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가 과장된 장광설만 늘어놓은 몽상가란 비판을 받게 된 원인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일견 옳은 지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혁명정부가 구성된 후 소비에트 러시아는 그들의 경제적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건설의 방해를 받게 될 것이며 '일국사회주의론'이란 혁명의 틀 안에서는 결코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러시아 혁명이 영구적으로 성공하려면 다른 국가, 특히 서유럽 국가들의 혁명에 의지해야 하며 역사적으로 경제체제는 일국의 경제로서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즉 모든 국가의 경제발전은 결국 세계시장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의 경제관이 담겨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러시아만으로도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스탈린의‘일국사회주의론'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고 스탈린의 독재에 반대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소련에서 권력을 장악한 소련공산당은 1920년대부터 점차 관료화되기 시작했고, 트로츠키는  1924년 관료화되는 공산당을 맹렬히 비난하며, 공산당 내·외부로부터 좀더 민주적인 요소가 도입되고, 모든 당원이 자유로이 자신의 의사를 발표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그에게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점증하는 사회주의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러시아를 고립·봉쇄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세계혁명의 도래를 가능하게 하리라 믿었던 1918-1923년 독일혁명의 참담한 패배는 뒤이어 파시스트들의 권력장악으로 이어졌고, 소련 내부에서는 스탈린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트로츠키는 실각하게 되고 망명자가 되어 혁명을 통해 건설한 사회주의 조국 러시아를 떠나게 됩니다.

그는 망명 후에도 소련 공산당과 스탈린의 독재에 대한 비판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1940년 8월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등산용 도끼에 찍혀 숨지고 맙니다. 스탈린은 트로츠키주의를 적으로 간주하여 그에 동조하는 여러 인사들을 비명에 숨지게 함으로써 트로츠키의 사상을 영구히 매장하려 했습니다. 비록 트로츠키의 예언대로만 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세계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러시아의 소비에트 정권은 붕괴하든지 부르주아화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며, 러시아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은 부정될 것이란 예언은 들어맞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트로츠키의 주장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성에의 신앙, 인간의 연대에 대한 신앙을 도저히 방기할 수 없는”혁명가로서, “내가 살아 숨쉬는 한, 나는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말한 한 인간으로서 그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언장

의식을 깨친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특히 그 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내가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들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결국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며, 오히려 오늘날 그것은 내 젊은 시절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방금 전 나타샤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주었기에, 공기가 훨씬 자유롭게 내 방안을 들어오게 됐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다워!

훗날의 세대들이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1940년 2월 27일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레온 트로츠키

 

<200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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