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의 말 -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마르그리트 뒤라스 외 지음, 장소미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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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있을 때 이 책을 구입해두고 있었다. Romane Fostier의 전기와 함께.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관련된 상대적으로 최신의 대담집과 평전이었기에 그 기획의 참신성과 진전된 측면을 내심 기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책 모두 문고본으로 가격 또한 저렴했다. <뒤라스의 말>은 87-89년에 파리 생브느와 거리에 있는 뒤라스의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로, 그의 삶과 예술을 연대기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뒤라스가 남긴 여느 인터뷰와 달리 전체의 상을 제공한다. 이런 특징이 이탈리어 인터뷰집(1989)이 다소 뒤늦은 2013년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유일 거라고 책의 역자 역시 분석하고 있다.


본 대담집은 뒤라스의 기존 인터뷰들의 불가피한 한계로 여겨질 수 있는 전문영역에 대한 인터뷰를 넘어서서 뒤라스에 대한 A-Z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베세대르abécédaire 형태의 입문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특정한 문제에 대해 인터뷰어가 한층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변주를 통한 반복적 질문으로 인터뷰이의 답을 강화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구태여 책의 한계로 지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심층적 구체성은 뒤라스의 다른 대담집이 이미 하나의 공간을 확보해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상을 그리기 위해 기획된 구조적인 방식의 인터뷰는, 그럼에도 인터뷰어-인터뷰이 간의 상호 친밀성과 신뢰성으로 인해 질문과 답변에 어떠한 불순물도 발견되지 않는 밀도가 지배한다. 억압되어 있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발언하는 뒤라스의 평소 신념대로, 그의 말은 어떠한 거짓 겸손과 위선 등을 허락하지 않는 순도높은 직진성으로, 발언 뒤에 미련을 허용하지 않는 말하기로 일관한다. 이는 어떤 면에서 아니 에르노를 떠오르게 한다.(아니 에르노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후 2001년에 제정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결코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일관하면서, 지식인 세계에 진입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인 침묵의 요구에 맞서 자신의 성애 경험(<단순한 열정>, <집착>)과 낙태 경험(<사건>) 등을 건조한 문체로 사실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억압된 것'을 폭로하고자 하는 작가 말이다. 인터뷰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뒤라스 특유의 태도는 사실상 그 이후 프랑스 여성(물론, 뒤라스나 에르노 모두는 '여성'이란 분류를 거부하고 있지만 분류의 편의를 위해 명명)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속된 문화자본의 어떤 기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말이다.


책의 미덕은 또한 문학-영화-연극이 뒤라스에게 사실상 개념적으로 분리되고 독립된 각각의 예술 영역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형식이라는 것을 인터뷰 주제의 논리적 배치를 통해 단번에 시야에 들어오게 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발견되는 문학-영화-연극 형식의 상호의존성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뒤라스가 지닌 남성, 여성에 대한 견해, 그가 작가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인 열정이나 사랑 등에 대한 견해와 함께 자연스런 담론적 일체가 된다.


이번 대담집이 뒤라스에 대한 일종의 통론을 구성하므로, 각론에 해당하는 다음의 대담집들이 번역출간되기를 바라면서 짧은 스케치를 마무리한다.(본문, 204~205쪽)(본문에서 언급된 『물질적 삶』,『말의 색채』는 이미 번역 출간됨)


- 자비에 고티에,『말하는 여자』(미뉘, 1974)

- 미셸 포르트,『트럭』(미뉘, 1977)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소들』(미뉘, 1976)

- 세르주 다네 및 <카이에 뒤 시네마> 편집부, 『초록 눈동장』(미뉘, 1987)

- 피에르 뒤마예,『텔레비전에 얘기하세요』(EPEL, 1999)

- 프랑수아 미테랑, 『뒤팽 거리의 우체국과 그 밖의 대화들』(갈리마르, 2006)

- 장피에르 스통,『인터뷰』(브랭, 2012)


난 나를 짓누르는 침묵을 말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열두 살 때인가, 오직 글쓰기만이 방법인 것 같았죠. - P24

글은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매번 앞서의 문체를 깨뜨리고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면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에요. - P43

난 더는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어쩌면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력에 대항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고, 은행의 과두정치와 우리를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해답일 거예요. - P47

오직 결여와, 연속되는 의미들 속에 숭숭 뚫린 구멍들과, 빈 공간에서만,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어요. - P84

내 안에서 글의 재료가 될 언어의 정화와 압축 작용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거든요. 글을 절제하고 싶은 열망, 모든 언어가 벌거벗은 상태로 질서 정연하게 들어선 공간에 대한 열망이죠. - P89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절대 특별하지 않아요. 우리가 바라듯 일정하지도 않고요. 다채롭고, 돌이킬 수 없으며, 우리의 의식 속에서 영원히 반향을 일으키죠. 메아리처럼, 강물의 동심원처럼 퍼져 나가고 시시각각 서로 교차되면서, 우리의 과거에서 미래를 오가는 거죠. - P93

모든 작가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기 자신에 관해 써요. 그들 인생의 핵심 사건인 그들에 대해, 마찬가지로 작가가 언뜻 그에게 낯선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건 늘 그의 자아, 그의 강박과 연관돼 있죠. 마찬가지로 꿈도-프로이트가 말했듯-우리의 에고이즘만을 드러낼 뿐이고요. - P95

나는 생각의 편린들을 그때그때, 굳이 바로 서로 연관 지으려 애쓰지 않고 적어둬요. 어느새 알게 모르게, 관계가 작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예요. - P96

난 나를 평범하게 만들고 무참히 망가뜨리고 이어서 중요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짐을 내려놓기 위해 글을 써요. 텍스트가 내 자리를 차지해서, 내가 덜 존재하도록. 나는 오직 두 경우에만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자살하거나, 글을 쓰거나. - P98

남성적 글쓰기에서는 관념으로 너무 무거워진 문체만이 느껴져요. 프루스트, 스탕달, 멜빌, 루소는 성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에요. - P101

평론가들은 늘 어떤 여성적인 영역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을 비난했거든요. 사랑의 테마나 고백, 자전적 소재 등. 수년간, 여성의 위반은 시에 국한되어 표현돼왔어요. 내가 그걸 소설로 이동시켰죠. 내가 한 많은 것들은 혁신적이에요. - P114

전통적인 영화로 재현된 현실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모든 것이 너무 말해지고, 너무 드러났죠. 의미의 과잉은 역설적으로, 맥락을 빈약하게 만들어요. - P135

아니요, 빈약한 예산은 내가 묘사하는 현실의 특성에 부합해요. 피폐하고 들쭉날쭉한 현실 말이에요. 영화의 아름다움은 또한 제한된 예산과, 내가 촬영 기간으로 두는 극히 짧은 기간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 P138

전지전능한 전통적인 소설가의 역할을 거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서사를 지배하고 장악하고 객관화하는 카메라의 침입을 거부하는 거예요. 카메라는 사건의 다원성에 중점을 둘 수 있도록 유연해야 하죠. 등장인물들의 시선처럼 드러나지 않게 움직이며, 다양하고 호환 가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해요. - P141

내 모든 영화는 본래 정치적이지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주제를 발전시키지 않죠. 정치적인 의미는 다른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해요. - P150

대화와 말이 숨기고 위장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 속에, 대화 속에 섞여 있는 암시적인 우물거림들 속에 체호프의 위대함이 깃들어 있어요. 그런데도 텍스트는 결코 포화 상태가 되는 법이 없죠. 행동이 정지되고 미완인 채로 내버려두는 내 텍스트들처럼. 일종의 침묵의 음악이라고 할까요. 아직 모든 걸 상상해야 하는. - P165

사랑이 비록 모든 예술의 주요 주제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묘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열정은 가장 진부한 동시에 가장 모호하거든요. - P171

살면서 종종 내가 존재하지 않는-어떤 모델도 레퍼런스도 전무후무한-듯한 기분을 느껴요. 늘 내가 있고 싶은 곳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곳을 찾아 헤매고, 늘 지각하고, 늘 남들이 즐기는 걸 즐기지 못하는 기분. 그런데 이제는 이 복합성이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늘 우리 본연의 모습인 단일성에 도달하기 위해 기를 쓰지만, 우리의 풍요로움은 바로 그 범람에 있는 거예요.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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