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의 아침 시문학시인선 593
강흥구 지음 / 시문학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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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울리지 않지만 사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자. 강흥구 선생이 시집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그가 걸어온 길과 문학 특히 시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전공하고 그것으로 평생 학생들을 지도해 온 사람이 시를 쓴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게 시이다. 그렇다면 강흥구 만한 사람이 있는가.

 

은퇴 후에 더 바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의 공통점은 은퇴 후 더 젊게 산다는 것이다. 강흥구 시인만 해도 그렇다. 그는 오랜 교사 생활을 거쳐 몇 개 학교 교장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은퇴했다. 산행과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색소폰도 배웠다. 시 공부도 은퇴 후 그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할배는 시 공부하러 간다”, 13쪽).

 

시집 발간 소식을 듣고 그가 어떤 시를 썼을까 생각해 보았다.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거나 비약과 상징으로 점철된 시는 아닐 것이다. 또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어지럽게 배열해 놓은 지적 과시 성향의 시는 더더욱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소박하게 시로 꾸며 놓고 있었다. 

 

시집 제목이 '둥지의 아침'이다. 1부 '반달 입'에 포함된 시의 제목에서 가져 온 것이다. 좋은 표제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둥지'는 새(鳥類)의 집을 말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보금자리, 살아가는 일상적인 집에 해당한다. '둥지의 아침'에 등재되어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는 출발 지점이 화자가 살고 있는 집이다.

 

둘째, '아침'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인데, 여기 나오는 시들은 모두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양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궁극적인 결론은 희망(稀望)이다. 학교 교사요 또 교회 장로로서 강 시인은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다고 말한다. 성선설을 따르는 사람이다.

 

강 시인이 한 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모두가 문제아로 보는 학생이 있었다. 퇴학시켜야 할 상황까지 간 이 학생을 양딸로 삼아 교화시킨 이야기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넉넉한 마음과 사랑이 시인이 되는 씨앗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에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처녀시집 <둥지의 아침>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합해 89 편의 시를 싣고 있는데, 내용 또는 형식상의 분류는 아닌 것 같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어 가면 된다. 시의 특징을 필자는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박하게 시로 꾸며 놓았다'고 했다.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빙긋이 웃음지어야 할 때가 많다. 솔직하고 천진스런 표현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시구(詩句)가 대표적이다.

 

"이만하면 멋지지 않나 싶다가도/좀 더 잘 생겼으면 해 본다"('거울', 12쪽), "바둑에 져서 화가 난다"('바둑을 두며', 25쪽), "아내를 독차지한 줄 알았는데/가슴을 훔쳐간 남자가 있었다"('아내의 남자', 38쪽), "그녀의 얼굴 떠올리다 시험 망쳤다"('아카시아꽃', 70쪽), "낯선 여자와 데이트하는/꿈에서 깼다"('열대야에 생긴 일', 82쪽), "건강 도우미 보건소가 짱이다"('건강 도우미', 113쪽)... .

 

강 시인은 학교 교장 출신이요 또 교회에서는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근엄의 대명사격인 직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표현이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마지막 예문 '보건소가 짱이다'에서 '짱'은 아이들이 쓰는 '최고'라는 뜻의 은어이다. 학생들과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그가 사용하는 시어들이 은퇴한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대체로 풋풋하다. 

 

시는 운율의 문학이다. 산문시로 일컫는 것조차 음악성이 배제되어 있으면 시라고 할 수 없다. 강흥구 시인의 시 전반에는 개울물 흘러가듯 졸졸거리는 운율이 가득하다. 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줄만 바꿔 쓰면 시인 줄 알고 미흡한 시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을 본다. 강 시인은 내용과 형식에서 나무랄 데 없는 시작(詩作)을 하고 있다. 

 

그가 프롤로그 격인 짧은 '시인의 말'에서 "은퇴 후에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리자 꽃들의 대화가 들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고 썼다. 내면에서 시심(詩心)을 조용히 가꾸고 있었다는 뜻이다. 강 시인이 은퇴하고 짧은 시 공부 끝에 '어떻게 하다' 보니 시인이 된 게 아니라 시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잠복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시를 내용상 또는 형식상 분류해서 이해하곤 한다. 서정시 서사시 극시 등은 내용상의 분류이다. 또 자유시 정형시 산문시 등은 형식을 보고 나눈 것이다. 강흥구의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이 정도라면 시의 장르를 하나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다. 수필시, 이것은 산문시와는 또 다르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장면이 그려진다. 다음을 보라.

 

"아내를 독차지한 줄 알았는데 / 가슴을 훔쳐간 아내가 있었다 //
삼십년 넘게 함께 살다 / 직장 따라 떠난 아들 / 아내의 마음까지 가져갔다"('아내의 남자' 중, 38쪽).

 

강 시인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에게는 아내요 아들에게는 엄마인 한 여인을 두고 갖는 사념(思念)에서 따스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다복한 가정을 우회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잠복해 있다. 시 '아내의 남자' 전체에 기승전결의 순서로 살을 붙인다면 그대로 한 편의 훌륭한 수필이 될 것 같다. 89편의 시가 다 그렇다. 그래서 '수필 시'라는 언어 조합을 생각해 본 것이다.

 

서두에 시집 제목 <둥지의 아침>을 설명하면서 강 시인 시의 출발이 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의 무대는 집 외에도 학교와 교회가 있다. 그러니까 그의 시는 '집+학교+교회'가 삼박자로 호흡을 맞추면서 펼쳐진다. 이 삼박자는 조화를 이루면서 사랑의 메아리가 되어 독자들에게 파고 든다. 다음과 같은 예문을 들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먼동이 터오면 / 할배와 할매는 새벽운동 나서고 / 며느리는 / 아침밥을 준비한다(下略)"('둥지의 아침', 13쪽).

"연못은 연꽃이 공부하는 교실 / 못 가운데 동산의 능소화는 선생님이다(下略)"('연못 학교', 66쪽).

"기도 시간에 내려다보니 / 구두가 약점이라도 잡은 듯 / 빤히 올려다본다...교회에서 예배드리고(下略)"('구두는 안다', 11쪽).

 

시 '둥지의 아침'은 가족애를 그리고 있다. 가족도 흔한 핵가족이 아니라 '할아버지(나)-아들-손자' 이렇게 3대가 동거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엔 가족 구성원이 하는 일, 취미 활동, 가사의 분담까지 따뜻하게 보여준다. 강 시인 가족애의 농밀도(濃密度)를 가늠할 수 있는 시다.

 

'연못 학교'는 그의 학생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은퇴하고 쓴 시인데, 말이 쉬워 40년이지 이쯤 되면 모든 사물과 현상이 학생들과 학교로 연결시켜 생각하기 쉽다. 그의 집이 접해 있는 연화지를 학교로, 능소화를 교사로 그리고 연꽃은 학생들로 연결 짓는 착상은 오랜 기간 교직에 종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강 시인을 받쳐주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기독교이다. 그의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집 맨 앞에 배치되어 있는 '구두는 다 안다'에 강 시인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도는 눈을 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는 눈을 감지 않고 구두를 내려다본다. 구두에게 약점이 잡혔다. 하나님께 일러바칠 눈빛이다. 시인의 맑은 마음이 엿보인다.

 

지면에 한계가 있어 일일이 설명을 붙일 수 없지만 그의 모든 시에는 가족 사랑, 학교 사랑, 교회 사랑이 넘쳐나고 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진선미(眞善美)에 사랑을 녹여 시작을 한다. 강 시인도 이런 룰(rule)에 충실하게 시를 짓고 있다. 시는 필요할 때 비유와 상징의 기법을 구사하는데 강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의 몇 개 예는 시인이니까 가능한 비유의 표현이다.

 

"휴대폰 자동차 지갑 없이/고양이는 하루를 잘도 살아간다"('길고양이와 나', 15쪽), "이 빠진 반달 입으로 함빡 웃는다"('반달 입', 17쪽),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말 한마디', 23쪽), "윈도우 브러시가 밤을 닦으며 공포를 겹겹이 포개고 있다"('비 내리는 밤', 33쪽), "가슴 속의 들국화로 피어 있다"('한로', 45쪽), "코스모스처럼 손 흔들고 있다"('마음의 짐', 48쪽), "야간부 만들 궁리로 대머리가 된 수달 교장선생님"('연못 학교', 66쪽), "샤워한 여인 머리 말리듯이"('뻐꾸기 소리에', 72쪽), "구도자 행색으로/찾아온 가을"('명적암의 가을', 87쪽), "두루미 떼가 초서로 날아간다"('가을 마중', 92쪽)... .

 

눈에 띄는 대로 옮겨 본 것이다. 시는 관찰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수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강 시인인 만큼 관찰력이 날카로우면서도 정밀하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강 시인 외에 눈 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색에 잠겼던 백로가 / 물 위로 낮게 날며 좌우로 춤을 추더니 / 날쌔게 물고기를 낚아채고 / 강가 낚시꾼을 흘깃 본다"('새벽 산책길', 88쪽).

 

관찰과 상상의 절묘한 교합이다. 이러한 표현이 시 곳곳에서 보인다. 내용이 풍성하다는 얘기다. 기독교 장로요 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마무리한 그를 꽉 막힌 사람, 사회의 흐름에는 둔감한 사람, 요즘 젊은 세대가 쓰는 용어로 '꼰대'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강 시인은 젊은이들의 속어도 유효적절하게 쓸 줄도 아는 사람이다('건강 도우미 보건소가 '짱'이다, 113쪽).

 

강 시인은 문학만을 위한 문학에 매달다리지 않는다. 지금의 사회 현상에 관심도 보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여긴다. 그는 좌우로 나뉜 이 사회가 하나 되어 화합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춘설'이 그런 시이다. 

 

"붉게 출렁이는 촛불과 / 태극기 물결 위에 / 골고루 흩뿌리는 눈발...너무 멀리 떨어진 / 좌와 우 / 하나로 모으는 춘설 / 까맣게 타버린 양의 가슴 / 달래준다"('춘설' 중, 63쪽).

 

가치를 한쪽에 부여하고 상대 쪽을 비난했다면 시뿐 아니라 시인의 위상에도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강 시인은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중용지도(中庸之道)를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 시집의 가치는 시 해설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김송배 시인의 격조 높은 시집 해설로 강흥구를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에 톡톡히 역할하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시집 출판을 맡은 시문학사도 증명된 시인의 시집만 내 주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다. 처녀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내는 일은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강 시인의 시필(詩筆)이 깊이를 더하고 더욱 확장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둥지의 아침, 강흥구 시집, 시문학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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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 - 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
김천의료원 지음 / 소금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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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책이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된다. 꼭 읽어야 한다는... 나 대신 실천한 분들에게 작은 빚이라도 갚는 심정의 일단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요구했다. 마스크의 상용, 사회적 거리두기, 주먹 인사... 어떤 법과 제도가, 아니면 권력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하겠는가.

 

코로나19는 이 사회에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그 바이러스 앞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나약하기 짝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자연의 노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감히 해 본다.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엔 그 기세가 많이 꺾였다. 드러나지 않게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헌신의 앞자리에 의료진이 자리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감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의료진까지도 피해가지 않는다. 맨 앞에서 코로나19와 맞서야 하는 사람들이 의료진이다. 환자를 돌보아야 할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코로나19가 대구 경북을 강타했다. 전례가 없던 메가톤 급이었다.  김천의료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다.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소금나무, 2020년 7월 14일 발행)는 김천의료원이 2월 21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뒤 4월 30일 해제되기까지 70일 간의 기록이다.

 

책의 부제(副題)에 내용을 압축해 놓고 있다. '집단지성의 승리, 김천의료원 70일간의 기록'. '집단지성'이란 말도 반갑다. 이 단어는 개인의 기능적 결합이란 뜻이 강한데, 이 책의 부제에 쓰인 '집단지성'에는 헌신과 사랑이 녹아 있다. 아주 신선하다.

 

『코로나19 사투의 현장에서』는 312쪽 분량의 책이다. 결코 얇다고 할 수 없다. 부피로 책의 거리를 재는 사람들에겐 은근히 부담스러울 수가 있겠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60명의 글쓴이가 3~4쪽 분량으로 쓴 단문이 대부분이다. 쉬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김천의료원 김미경 원장의 프롤로그와 응급의학과 임창덕 과장의 에필로그 사이에 네 개의 파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각 파트의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위 소제목을 잘 농축해 놓은 제목이다.

 

PART 01. 집단지성의 승리, 당신들은 영웅입니다(하위 제목으로 7 꼭지의 글).
PART 02. 그대 걱정 말아요! 우리가 지켜줄게요(하위 제목으로 13 꼭지의 글).
PART 03. 슬기로운 병동생활(하위 제목으로 25 꼭지의 글)
PART 04. 동행, 인생을 함께 걸었던 70일(하위 제목으로 13 꼭지의 글)


PART 01은 김천의료원과 관계하는 사람들의 응원 글이다. 경북의사회 회장, 대한간호사협회 회장 등 대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19와 70일간의 사투에서 승리한 김천의료원 병사들을 '영웅'이라며 칭찬한다.

 

PART 02는 전쟁으로 치면 야전사령관 격인 의료원 각 과장 13명의 코로나19 환자 치유기이다. 의사 본래의 냉정함 속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 뭉클함을 선사한다. 읽는 재미를 더하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

 

PART 03은 최전선에서 싸운 간호사들 얘기이다. 같은 시공간을 무대로 같은 주제를 갖고 글을 쓰면서도 독특한 개성들을 발현하는 것이 감미롭다. 따라서 그들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당당함이 있다.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25꼭지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

 

PART 04는 뒤에서 묵묵히 돕는 사람들이 기록한 글이다. 시설팀, 영양팀, 생활안전팀, 경리팀 등의 전후 준비와 일 정리가 없었다면 코로나19와의 싸움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드러나진 않지만 그들도 영웅의 대열에 합류시켜야 한다.

 

70일 간의 전쟁이 4월 30일 끝났다고 했다. 코로나19와의 전면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곳 김천의료원의 국지전이 끝났다. 감염병 전담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두 달 여 만에 보란 듯 멋진 책을 만들어 냈다.

 

60명의 글을 4개의 PRRT로 나누어 엮었다고 했다. 출판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글쓴이가 10명만 돼도 출판 날짜 맞추기가 어렵다. 원고가 제 날짜에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60명이 쓴 글을 두 달 여 만에!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김미경 원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의료원 대표에게 드리는 형식적인 헌사(獻辭)가 아니다. 직원들의 언급을 몇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사랑', '신뢰',  '공감'이 될 것이다. 사랑은 관심으로 나타나고, 신뢰는 헌신으로 이어진다. 공감은 바로 동지 의식이다. 김미경 원장의 서반트 리더십이 돋보였다.

 

필력들도 만만치 않다. 원고를 다 모아 최종 윤문(潤文)을 했겠지만 소재와 글 이음 그리고 잠정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글의 전개가 좋았다. 대부분 꽁트(掌篇, 짧은 산문)에 속하는 글이지만 일기 형식의 글, 액자 소설에 포함시켜도 무방한 글(정진혁 과장),   프롤로그 임창덕 과장의 '끝과 시작'은 초현실주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미로웠다.

 

책 맨 앞 쪽 서지 정보란에 이 책의 지은이는 김천의료원으로 되어 있다. 김천의료원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썼다는 말이다. 김천에 살면서 김천의료원의 역사가 100년이나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까운 것을 당연시하듯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는 의료원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것 같다.

 

김 원장을 비롯한 의료원 구성원들이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 후 걱정한 내용들이 책 중간 중간 나온다. 눈 앞의 수익만 따진다면 거절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이니 만큼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다. 사랑과 헌신은 만국 공통어다. 코로나19 앞에 보인 김천의료원의 집단지성은 지역에 좋은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전염병은 사람을 멀리하게 만든다. 이웃, 직장 동료 심지어 가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그럴 수 없다. 감염이 창궐할수록 환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당연 위험이 따른다. 70일 간이란 기나긴 사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의료원 직원 중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기록해 두어야 하겠다.

 

코로나19가 연일 뉴스에 오를 때에도 구체적 내용까지 우리가 다가갈 수 없었다. 일반 시민이 돕고 실천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환난의 위기 앞에서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길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김천의료원이 다시 생동감 넘치는 병원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흐뭇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김천의료원이 국가 재난의 때에 큰 몫을 감당했으니 발전의 동력은 당연지사(當然之事). 70일 간의 사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자. ‘휴머니즘이 피어올린 아름다운 향연’으로 하면 어떨까. 수고한 분들에게 큰 박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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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분을 생각한다
한승헌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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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책을 읽기는 오래간만이다. 잠자리 들기 전 짧게는 30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읽다 보니 자정을 지나고 있었고, 더 읽다보니 300쪽을 넘어가고 있었다. 353쪽의 부피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내 눈을 강하게 붙들 거라는 예감을 순간 했었다. 이유가 있다. 지은이 한승헌 변호사는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온 사람이다. 글 중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소개되지만 시국 사건 변론을 하다가 구속된 적도 있다. 정의를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한 변호사는 법조인 중 유려한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문학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니, 변호사와 문인이라는 두 영역에 두루 활동 공간을 갔고 있으니 그를 변호사 겸 문인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훌륭한 수필가이다.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은 만남 자체가 깨끗하다. 만나는 상대가 깨끗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깨끗하다. 여기서의 깨끗함은 정의와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약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것을 한 데 묶어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해 두자.


책 제목이 <그분을 생각한다>이다. ''가 아닌 '그분'을 책 제목에 포함시킬 때는 사람이 아닌 절대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그분'은 사람이다. 변호사인 그가 변론을 맡았던 사람들이 많고, 법을 연결고리로 만나 교제한 사람들이 더해진다.


'그분'의 대상에는 문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승헌 변호사는 법이라는 그물로 그들을 이 사랑의 향연으로 조심스럽게 모셔온다. 약전(略傳)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은 27명에 달한다. 27명이 한승헌에게 '그분'들이다. 한 변호사가 '그분'이라고 할 정도면 독자들도 관심 갖고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27명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뭘까. 출생지가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각기 다르다. 크게 묶어 예술인 법조인  종교인 등으로 대별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종사하는 일이 제각각이다. 여기서 꼭 한 가지 공통점을 뽑아낸다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다는 것, 지은이는 이것을 '사서 고생한'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1855년생인 녹두장군 전봉준에서부터 현재를 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아우르고 있으니까 기간 상으로 150년이 넘고, 공간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심지어는 금단의 땅 북한까지 포괄하고 있다. 출생 연도 별로 인물을 배치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서사적 묘미까지 맛볼 수 있다


한승헌은 예리한 눈으로, 그러나 따뜻한 마음으로 인물들을 그려낸다. 지은이도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27인의 인물들을 두 개의 틀로 그리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인물의 시대상황과 삶의 행보를 원경(遠景)으로, 저자가 직접 교감하고 확인했던 인간적 측면을 근경(近景)으로 해서 썼다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사람을 조망하고 있으니 종횡(從橫)이 정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글 중에는 장례식 조사도 있고 추도사도 있으며, 책 발간을 축하하는 인사의 말 등 발표 장소와 시기가 각기 다르다. 그러나 저자가 '그분'이라고 표현한 인물들을 그리워하는 심정만은 절절하다.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이라고 했다.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허무주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노랫말이다. <그분을 생각한다>에 나오는 '그분'들은 그렇기 때문에 허무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이타주의로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의미 있는 한 평생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책 사이즈도 소지하기에 알맞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사륙판 변형(140195)이다. 책이 멀어지는 시대를 거스를 수 있는 좋은 매개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피한다. 직접 읽어 보시라. 대신 그분들의 이름만이라도 알릴 필요는 있겠다. 목차에 있는 순서대로이다. 출생 순서이기도 하다.

 

전봉준 장군, 함석헌 선생, 김재준 목사, 이응노 화백, 신석정 시인, 소설가 안수길 선생, 이병린 변호사, 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 이태영 변호사, 이돈명 변호사, 김관석 목사, 이우정 교수, 김대중 대통령, 김찬국 목사, 송건호 선생, 리영희 교수, 신동엽 시인, 천상병 시인, 인민예술가 정창모 선생, 소설가 남정현 선생, 이어령 교수, 박우동 전 대법관, 박현채 교수, 김상현 의원, 인혁당 사형수 여저남 군, 김경득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이상 27)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기를 권하지만 관심 가는 인물을 취사선택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불의가 정의가 되고, 악이 선으로 둔갑하기 쉬운 가치 혼란의 시대에 과거 산소같이 살다 간 선인(先人)들을 만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책이라는 확신으로 독자 제현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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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도요히코 평전 - 사랑과 사회 정의의 사도 밀알 아카데미 34
로버트 실젠 지음, 서정민.홍이표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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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위해 책 한 권을 놓고 이렇게 씨름해 보기는 처음이다. 이유가 뭘까. 책이 두꺼워서?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어서? 아니다. 사람에 기인한다.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일본의 참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쉽게 접근되지가 않는 일본인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이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목회자요 사회운동가인 가가와 도요히코는 내가 바라는 인간 상(像) 중 하나였다. 참 목회자가 되는 것도 어렵다. 참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가가와 도요히코는 잘 해 냈다.

기독교인 비율이 1%도 채 안 되는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치 않다. 언뜻 생각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외 지금 소개할 책의 주인공 가가와 도요히코 정도이다. 이들은 일본뿐 아니라 이웃나라에도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

신앙과지성사 최 대표에게 책을 한 권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읽어 나갔다. 읽는 도중 원문 대조가 필요한 곳이 있어서 Robert Schildgen의 Toyohiko Kagawa : apostle of Love and social justice(Centenary Books, 1988) 원서를 어렵게 구입했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2007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賀川豊彦記念松澤資料館 監譯 <賀川豊彦-愛と 社會正義を 追い求めた生涯>(新敎出版社, 2007)가 이 책인데 내친김에 그것까지 일본에서 공수해 왔다. 나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인 독서요, 서평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은 3국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평전의 주인공은 일본 사람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이다. 그 사람을 미국인 실젠(Robert Schildgen)이 영어로 썼다. 또 그 영서(英書)를 한국의 서정민·홍이표 두 박사가 우리말로 번역을 했다.

그만큼 공감대가 확장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글 앞머리에 책의 부피가 많다는 뜻을 비쳤는데 정확하게 568쪽이다.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재미있는 문학 작품처럼 술술 읽힌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지 않게 된다. 내용도 좋고 번역도 잘 되었다.

번역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덧붙이자면 창작에 가까운 번역이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문장 하나하나 아니, 단어까지도 세밀한 고증을 거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역자 주와 내용 주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점이 이것을 말해 준다. 연보도 원서에서 대폭 보완을 했다.

무엇보다도 원서에는 없는 수많은 사진들은 역자들이 발로 뛰며 수집한 것들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관계되는 사진을 적재적소에 삽입하고 설명을 부기해 놓음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원서와 일어 역본보다 완성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가가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실젠이 쓴 평전이다. 서정민 교수도 역자 후기에 썼듯이 일본인이 아닌 제3국의 사람이 쓴 이 평전은 객관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일어뿐 아니라 영어 자료까지 충분히 섭렵하고 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류(傳記類)가 hagiography(칭찬 일변도)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인이 쓴 가가와 전기도 여러 종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전기의 맹점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실젠의 이 책은 평전이라고 하지만 역사적 자료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책 뒤에 첨부한 후주와 참고문헌 그리고 찾아보기는 한 권의 훌륭한 학술서적을 연상케 한다. 후주를 꼼꼼히 읽어보면 일서와 영서에 신문 잡지 기사까지 인용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중요한 부분은 관련 인사를 찾아 가 인터뷰까지 해서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앞뒤로 두고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 제목만 나열한다고 해도 가가와 도요히코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대강을 그려볼 수 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장(章)의 제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신비적 반역자의 형성, 제2장 생각을 행동으로, 제3장 빈민가 속으로, 제4장 아메리카 간주곡, 제5장 노동쟁의의 주도, 제6장 농민과 피차별 부락민을 적시며, 제7장 '하나님 나라' 운동, 제8장 미국을 뒤흔든 일본의 협동조합 운동가, 제9장 태평양전쟁의 광풍 속에서, 제10장 전시하의 평화주의자, 제11장 재건과 참회, 제12장 평화를 만드는 사람.

가가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자였다. 그 반역의 꼭짓점은 정의와 약자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지성인이었다. 빈민들은 사랑과 섬김의 대상이었고,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도미(渡美)를 했다.

미국에 가서도 그의 관심은 노동운동 등 사회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사회운동을 하는 데 큰 지침이 되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태평양전쟁에서의 패전 뒤 일본을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세계 평화가 그의 목표였다.

책의 부피에 압도당하는 사람은 한 장(章)씩 독파한다는 마음으로 읽어 나가도 좋다. 아마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대구대학교 내 '賀川豊彦硏究會'라는 데에서 가가와에 대한 책(黑田四郞 『나의 賀川豊彦 연구』)을 출판했던 적이 있다.

가가와에 대해 잘 몰랐던 때여서 '일본 사람에 대한 책을?', 거기 더해 '일본인 이름을 딴 연구회까지 대학에 버젓이?' 일종의 반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가가와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로 인해 일본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해방 뒤 우리나라를 방문해(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사과를 한 첫 일본인이다.

학술 서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다고 했지만, 넓게 볼 때 교양 도서에 속하는 책이다. 책을 추천한 사람들의 면면에서도 그것이 읽혀진다. 곽금순(한살림연합 상임대표), 김형미(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정혜(두레 대표), 차흥도(감리교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古屋安雄(가가와 도요히코 학회 회장).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해 주고 있다. 물신주의와 성장제일주의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지향해온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빈민들과 함께 젊음을 불 사르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깨우침을 위해 열과 성을 다 한 가가와다. 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접점에 생활협동조합이 있다며 조합운동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가가와 도요히코다. 지금의 일본 농협과 세계 최대 규모의 코프고베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정의를 추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했고 끝마쳤다. 목회자는 사회의 흐름에 초연하게 교회만 잘 돌보면 된다는 의식이 우리 교계에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가가와 도요히코 읽기를 권하고 싶다. 사랑해야 할 범주가 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끝으로 몇 가지 보완할 것들을 지적하고 서평의 소임을 마치려 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오탈자가 드문드문 산견된다. 가령 '조의(賻儀)'(조의⟶부의, 37쪽), '엥겔⟶헤겔'(61, 62쪽), '사신'(使信⟶私信, 275쪽, 원문은 his message of the social gospel of Christianity로 되어 있음). 재판 때 수정할 것들이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간디와 슈바이처와 함께 20세기 초반 3대 성인으로 일컫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가와는 우리에게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 36년의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제의 한국 지배를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와 상면함으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바란다.
 
"일본의 교회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해 주십시오!"
(Please do your best for world peace and the church in Japan)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1960년 4월 23일 자택에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72세였다.

 

*필자 이명재 / 덕천성결교회 목사, 김천일보 발행인, 호서대 강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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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
염창선.황진훈 지음 / 컨콜디아사(재단법인한국루터교선교부유지재단)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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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아 들고 강한 힘을 느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에게서 개혁의 힘을 느꼈고, 부가적으로 책 제목이 또 그 힘을 뒷받침했다. '반전의 일격'은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 중세 유럽을 정신적으로 결박하던 가톨릭에 일격을 가해 반전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루터는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주님이 교황청에 '일격'을 가하셨다"(12쪽)고 했다. 물론 겸양지사謙讓之辭다.

 

종교개혁의 시발始發 마르틴 루터! 루터는 내 앞에 늘 큰 산으로 우뚝 서 있다. 그런 연유인가. 루터에 대한 글은 읽을수록 새롭다. 그의 신학과 신앙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 1월 중순 저자 염창선 박사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이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컨콜디아사)다. 그날이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한 날이기도 해서 내게는 의미 있는 기념 선물이 됐다.

 

표지 안쪽 제목 밑에 "이 책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거듭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엮은 것"(3쪽)이라고 했지만, 비기독교인이 교양서적으로 읽어도 좋은 책이다. 중세 유럽의 역사 안목을 넓혀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유럽사는 기독교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학자 루터가 끼친 영향은 다방면을 포괄한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독서 욕구를 충족할 책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신앙뿐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광범위하고 전방위적이다. 그의 개혁 정신은 16세기에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진행돼야 할 테제이다. 신앙뿐 아니라 개혁해야 할 것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그 점에서 이 책의 출판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독자를 과거로 데려가는 작업이라기보다 과거의 마르틴 루터를 오늘로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해도 좋겠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간다면,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개혁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부피가 그렇게 크지 않다. 234쪽이다. 그렇지만 루터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거의 빠짐없이 담고 있다. 면죄부 반박 95개조 논제, 성상 파괴에 대한 입장, 농민운동에 반대한 이유, 성례 개혁 등 루터의 진수眞髓를 농축해서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됐다. 머리말과 추천사, '들어가며'가 본문 앞에 배치됐고 본문 뒤에 '마무리하며'와 참고문헌, 별첨이 붙었다. 별첨도 예사로 보면 안 된다. 마르틴 루터 연표, 마르틴 루터 관련 주요 유적지(주소 및 관리소 연락처)가 별첨의 내용이다.

 

책은 일반적으로 한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학술 서적은 연구를 위해 필요하고 실용 서적은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교양서적은 마음의 양식을 쌓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는 여러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쓰였다.

 

각주가 꼼꼼하게 붙어 있고 참고문헌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으니 학술 서적으로도 손색없다. 책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쉬운 문장으로 돼 있다. 밑줄을 치면서 꼼꼼히 읽어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학술 서적도 쉽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마르틴 루터의 전기문 성격도 지녔다. 별첨의 '마르틴 루터의 연표'는 그의 생애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1483년 11월 10일 출생에서부터 1546년 2월 22일 비텐베르크 궁정교회에 묻힐 때까지, 전 생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루터 관련 독일 유적지 여행의 가이드 역할도 한다. 별첨의 '마르틴 루터 관련 주요 유적지'에는 스물다섯 군데의 유적지 주소와 전화번호가 병기됐다.

 

중세 교회는 타락의 극점을 달리고 있었다. 9차에 걸친 십자군 출전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리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만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입고 말았다. 면죄부 판매는 이 무마책으로 짜낸 교황청의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전사자들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죄(벌)를 사함 받는 면죄부 매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사해 연옥에 가 있는 영혼을 천국으로 들어 올리기 위해 면죄부를 사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었다. 여기에 재미를 본 교황 권력은 베드로성당을 신축하면서 드는 거액의 재정을 면죄부 판매로 보전補塡하려 했다. 루터는 면죄부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루터가 이 문제를 항의하려고 비텐베르크궁정교회 정문에 붙인 것이 95개조 논제(Die 95 Thesen)다.

 

이 책은 여러 용도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그 용도를 종합해 말하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사'로 명명할 수 있겠다. 루터의 출생에서부터 그의 개혁이 다른 나라에 끼친 영향까지 짧지 않은 기간의 다양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핵심을 다 기술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저자가 "마르틴 루터의 주요 서적과 그 배경, 핵심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13쪽)고 언급한 것에서도 내용을 알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목차 중 각 장 제목만 순서대로 소개하면 이렇다. △무대가 준비되다 △일격을 가하다 △주어진 역할에 집중하다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다 △일상 속에서 실천하다 △개혁의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책의 대강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 특징이기도 한데,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을 '심층 이해'와 '표'로 보충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공자라면 손수 찾아 공부할 부분이지만 일반인을 위한 장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학술 서적이면서 동시에 교양서적이라고 언급한 이유도 여기 있다.

 

<반전의 일격, 마르틴 루터>는 두 사람이 썼다. 독일에서 역사신학으로 학위를 받은 염창선 박사는 대학교수다. 다른 한 사람은 산업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장으로 일하는 황진훈 박사(북한학)이다. 즉 학자와 일반 신도가 함께 만든 책이다. 학술 서적 겸 교양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책 요소요소에 삽입된 루터와 관련 있는 흑백사진은 눈의 피로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선명하게 인쇄된 흑백사진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이건 오로지 독일 현지에 근무하는 황진훈 박사의 공이다. 염창선 교수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어떤 때는 사진 3장을 다시 찍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스레벤까지 500Km 거리를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열정이 녹아 선명한 사진이 적재적소에 삽입된 책을 만들 수 있었다.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95개조를 8개 항으로 나눠서 정확하게 번역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횃불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95개조를 온전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세밀히 살펴보기 바란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루터와 더 가까워졌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루터 종교개혁의 모토였다. 추천사를 쓴 종교교회 최이우 목사가 지적했듯이, 루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이 종교개혁의 구호가 500년 후인 오늘까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 루터를 읽으며 교계를 되돌아봤다. 세속화가 그 도를 더하여 교회를 어지럽히는 지금,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제현諸賢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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