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삽질
김예희 지음 / 천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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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 받은 따뜻한 한 권의 수필집

 

수필집을 한 권 증정 받았다. 따뜻했다. 노란 표지 면(面)도 따뜻했지만 내용은 더욱 그랬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생각의 삽질'이라니. 생각을 삽질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예향(藝香)을 물씬 풍길 수 있는 사람일 테다.

 

사실이 그랬다. 수필집 <생각의 삽질>(도서출판 천우, 2016년 11월 3일 발행)을 상재(上梓)한 사람은 김예희이다. 내겐 같은 지역, 같은 신앙 안에서 만난 존경하는 장로님이다. 그의 첫 수필집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김예희는 교육자다. 사랑과 성실로 40 여 년 교육 현장을 지켜 온 사람이다. 평교사로 시작해서 여러 학교의 교감 교장을 거쳤다. 뿐만 아니라 교육 행정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교육지원청 장학관과 교육장까지 역임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문학과 늘 함께 숨 쉬어 왔다.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고, 문예반 아이들과 함께 '문학'이란 연못 속을 즐겨 헤엄치고 다녔다. 그러기 위해선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독서 편력이 따랐을 것이다.

 

수필을 쓰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

 

그가 문학 작품을 발표한다면 소설이나 시보다도 수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수필과 같은 삶을 살아왔으니까. 수필은 일인칭 '나'의 진심을 고백하는 문학이 아닌가. 교육자와 수필가, 진실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수필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고. '따를 수(隨)' '붓 필(筆)' 수필(隨筆)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는 뜻이다. 붓 가는 대로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성숙한 사고(思考), 절실한 경험, 여기에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 더, 탄탄한 문장력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용을 써도 붓 가는 대로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수필집은 많되 진정한 수필의 글은 많지 않은 현실이 이것을 잘 말해 준다.

 

김예희의 수필집 <생각의 삽질>은 내가 읽은 수필집 중 '붓 가는 대로 쓴 글'에 부합하는 책이다. 바른 수필가가 쓴 참된 수필이란 말이 되겠다. 그는 수필이 요구하는 성숙한 사고와 절실한 경험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탄탄한 문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총 4부 속에 담겨 있는 인생의 진실

 

김예희 수필집 <생각의 삽질>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을 대충 분류한 게 아니라 기준을 정한 뒤 치밀하게 나누었다. 제1부 눈물 나이테, 제2부 백야(白夜) 삼일, 제3부 황소걸음으로 여기까지, 제4부 배려와 용서에 대하여.

 

이 수필집 해설을 맡은 평론가 최병영은 각 부 구성에 대하여 과학적 분석을 내 놓고 있다. 제1부는 작가와 그의 가족 이야기, 제2부는 작가의 공직생활과 교육에 대한 신념 및 삶의 철학, 제3부는 교육자로서 겪은 예화 및 가족과의 유대관계, 제4부는 자신의 교육 전문직 체험과 퇴직자들에 대한 회상과 격려라고(241쪽).

 

수필을 여러 잣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진술 방식과 태도에 따라 나눌 때는 서정적 수필에 속하는 글들이 많다. 김예희의 수필도 그렇다. 작가가 일상생활 또는 자연에서 느낀 감상을 주정적이면서도 주관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교훈적 요소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작가의 오랜 교직 경험에서 얻은 예지(叡智)를 기초로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웃을 축복해야 나에게도 축복받는 일이 생김(13쪽), 사랑이란 온 우주가 한 사람에게로 좁혀지는 기적(24쪽),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 인간다움의 기본(128쪽) 등의 표현이 좋은 예이다.

 

풍부한 어휘력과 탁월한 수사 기법

 

작가는 IT 시대임에도 국어대사전(3권)을 늘 옆에 끼고 산다. 그의 수필에 수놓는 풍부한 어휘는 이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덕분에 사전을 곁에 놓고 수필집을 읽는 재미를 나로 하여금 덩달아 맛 볼 수 있게 했다. 가령, 이런 단어들은 새로 익힌 것들이다.

 

술지게미(18쪽), 철부지하다(28), 망백(望百, 30쪽), 남우세스럽다(39쪽), 부정모혈(父精母血, 91쪽), 수주작처(隨主作處, 96쪽), 홑지다(144), 유상(遊賞, 145쪽), 굽바자(161쪽), 혼겁(魂怯, 166쪽), 곤줄박이(185쪽), 노랑턱멧새(185쪽), 거양(擧揚, 236쪽) 등. 풍부한 어휘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자산이 된다. 김예희의 수필이 문학적 가치가 높다는 것은 이런 데에도 기인한다.

 

수필가는 많되 문학성을 담지하고 있는 수필가는 많지 않다. 김예희의 수필은 문학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사 기법이 탁월하다. 이런 것에 눈을 줘 보라.

 

"온 식구들 마음 기둥에 현수막이라도 내 걸어야겠다"(32쪽), "화목의 소금으로 수놓던 며느리의 미소"(33쪽), "첫 번째 유혹은 황금 빛깔이다"(45쪽), "서산에 해가 노루꼬리만큼 걸쳐 있던…"(54쪽), "계단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시던 말씀이 방 안 가득 쟁쟁하다"(54쪽), "하늘이 구름차일(遮日)을 잔뜩 둘러 주니…"(78쪽), "들국화 여러 송이가 연보랏빛 인사를 건넨다"(171쪽) 등.

 

수필가 김예희는 오래 교직에 종사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은퇴는 연치(年齒)가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그는 늘 젊게 살고자 노력한다. 환갑을 지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도 강의로 봉사로 또 교회 일로 쉴 새가 없다. 이런 삶이 앞으로 나올 제2 수필집의 좋은 글감들이 될 것이다.

 

그는 생각도 젊고 쓰는 용어도 그렇다.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고 카카오톡 가족 그룹방을 만들어 함께 즐기며(32쪽), 페이스북까지 장착해서 SNS를 널리 활용하는 것이 신세대에 뒤지지 않는다(124쪽). 수필가 김예희는 동양 고전의 원천 한자(漢字)에 능하지만 젊은 세대 용어도 외면하지 않는다. 소개팅(맞선, 14쪽), 인기 짱(72쪽), 세종대왕(일만 원 권, 123쪽) 등의 단어에서는 옅은 웃음이 솟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성실성

 

김예희는 순수한 사람이다. 평생을 아이들과 부대껴 살아 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는 책 앞 '작가의 말 중'에서 그의 생활 철학을 세상의 두 축-사람과 일-이라고 했다. 난 이 표현에서 생략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두 축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성실하게 임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람 사랑과 일에 대한 성실성은 <생각의 삽질> 전편에 흐르는 주제어가 된다. 이 사랑은 가족과 학생 그리고 직장 동료를 넘어서 소외받는 이웃(노숙자, 123쪽) 나아가 산 짐승과(185쪽) 식물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171쪽). 그의 사랑은 대상이 무한대란 말이 된다.

 

일에 대한 성실성은 사람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작가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정성껏 가르치는 교사였고 교육지원청에 근무할 땐 빈틈없는 행정가였다. 아버지가 지으시던 밭에 농사를 지을 때에도 성실함은 빠지지 않았다. 수필집의 제목 <생각의 삽질>도 '삽질의 지혜'(79쪽)에서 뽑아 올린 것이다.

 

수필가 김예희는 자상한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의 자호 '우봉(牛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지나치리만큼 우직한 성품을 갖고 있다. 이것은 빈틈이 없는 섬세함과도 통하는 말이다. 지방의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어 낸 그의 수필집이 완벽에 가까운 데 놀랐다. 모르긴 해도 작가가 손수 교정을 본 게 이유이지 싶다.

 

환희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몇 개의 오탈자

 

하지만 눈을 씻으며 읽으면서 몇 개의 오탈자를 발견했다. 이것을 발견해 내고 환호하는 나는 도대체 뭔가. 온전함을 무너뜨렸다는 환희? '덧니를 속아내고'는 '덧니를 솎아내고'로(31쪽), '아니 탈 마음이'는 '아니, 탈 마음이'(56쪽)로 쉼표(,)를 넣어야 하고, '유래 없는'은 '유례없는'(168쪽)으로 고치는 것이 문맥에 어울린다.

 

'그 이후'는 유어반복으로 '그 후' 또는 '이후'로 하는 것이 좋고, 182쪽 '나타면'은 '나타나면'의 탈자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233쪽 '개관적인 면'은 '객관적인 면'의 오식이지 싶다. 이 책이 많이 읽히어 재판을 찍을 때 참고가 되면 좋겠다.

 

시, 소설 등 문학서엔 그 책에 대한 평론가의 해설이 책 끝에 실린다. 수필집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대부분 칭찬 일변도의 '주례사 비평'에 머문다. 김예희 수필집 <생각의 삽질>을 해설한 최병영은 그렇지 않다. 유려한 문장과 깊이 있는 진단으로 수필집의 가치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작가에 대한 비평가의 애정이 물씬 피어오른다.

 

수필가가 자신의 책을 펴내면서 '나의 문학관'을 자신 있게 피력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김예희는 첫 수필집 <생각의 삽질>에 '삶을 재조명하여 존재의 향기를 찾는 수필 미학'이라는 생각을 부기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지나 온 길을 회상하면서 앞으로의 문학적 각오를 다짐하는 글이다. 책 읽기 전에 이 글을 정독한다면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수필의 맥(脈) 잇기를 바람

 

수필은 경험과 성찰, 관조(觀照)의 문학이다. 따라서 젊은 사람보다는 머리 희끗한 연배의 사람이 쓰기에 적당하다. 이 가운데 수필가 우봉(牛峰) 김예희가 있다. 그는 수필 쓰기의 적임자다. 이양하, 피천득, 안병욱 등의 뒤를 이어 우리의 수필 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우봉 선생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자제현의 일독을 권하며 작가에겐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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