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신은미 지음 / 네잎클로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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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것은 바로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외세에 의해 한 민족이 헤어져 살아야 하는 삶, 그것은 슬픔이고 바로 우리의 한 맺힌 비극이기도 하다. 함석헌 선생은 해방이 예기치 않게 도둑처럼 찾아왔다고 반어법적 표현으로 말했다지만 통일도 그렇게 찾아올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북 당국자들의 지난한 노력이 따라야 하고 국민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결집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민간 교류도 정권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들쑥날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남북의 민간 교류가 비교적 활발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금강산 관광도 멈춘 지 오래고 개성 공단도 가동이 중단된 후 시간이 꽤 흘렀다. 이산 가족 상봉 행사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평화 통일은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의 바라는 바일 텐데, 지엽적인 문제, 예를 들어 만남의 격식 문제라든가 북을 향하여 선동 삐라가 든 풍선을 날리는 문제 등으로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통일 문제만큼은 공히 남북의 대범한 접근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럴 때 책 한 권을 손에 잡았다. 재미교포 신은미가 세 번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책이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라고 한다. 제목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네잎클로바)이다. 지은이 신은미와 황선(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이 서울을 비롯해서 몇 개 도시에서 통일토크문화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였다. 그들이 본 북한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였다. 남북의 동질성 회복은 통일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갈 수 없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나라, 북한은 알아서는 안 될 금기의 땅이었다. 그래서 궁금증을 더 자아내게 했다. 

 

이들의 통일 콘서트를 종편 방송과 극우매체 그리고 공안기관 등에서는 애써 '종북 콘서트'로 규정하고 여론몰이를 했다. 그러던 중 전북 익산의 한 성당에서 있었던 이들의 콘서트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면 사고(思考)가 아직 무르익지 않을 나이이다. 이런 어린 학생이 콘서트 현장에서 황산 테러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테러를 일으킨 학생과 배후 세력을 밝히는데 수사력을 집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안 당국은 도리어 신은미를 강제 출국시키고 황선은 구속 수감시키고 말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편향적인 법 집행이었다.

 

신은미가 쓴 방북기(訪北記)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또 다른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우수도서(세종도서)로 선정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뒤늦게 선정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이해 못할 노릇이었다. 전형적인 정권 아부 성 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닌데 세상에 무슨 큰 변동 사항이 있었다고 1년 전 선정된 도서를 제외한단 말인가.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북한 체제를 옹호했다든가 아니면 그곳을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 대목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읽어 보지도 않고 오도된 여론을 의식해 이런 결정을 한 문체부는 국민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정권 보위만을 위한 기관이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도서 등 표현물을 무원칙하게 칼질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적 표현물도 아닌데. 사람이 밉다고 해서 그가 지은 책까지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전체주의 작태밖에 안 된다. 도대체 이 책이 국민의 정서를 해할 만큼 정말 좋지 않은 책인가. 보수적인 가정에서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해 온 지은이를 책 한 권으로 종북 좌파로 몰아세우는 정부라면 지극히 나약하고 무책임한 정부임을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을 가다>는 기행 수필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많은 사진을 곁들여 쓴 383쪽에 이르는 그의 북한 소개는 한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지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북한이 동토(凍土)의 땅만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한민족이 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살고 있는 곳임을 말해 주고 있다. 지난 세기 작가 황석영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와 비슷한 시선으로 그곳의 구석구석을 소개한 글이다. 황석영의 글이 소설가 특유의 윤필(潤筆)에 능한 글이라고 한다면 신은미의 글은 아마추어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세 번에 걸친 여행의 글을 한 권으로 묶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언부언 내용의 반복 없이 말끔한 문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신은미는 2011년 10월, 2012년 4월, 2012년 5월 이렇게 세 번 북한을 다녀왔다. 미국의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은 지금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 외에는 누구든지 방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고 한다. 통일에 관심 가진 재외 동포들의 방북으로 그곳 소식이 전해진다는 것은 다행이다. 통일은 적대 의식이 아니라 서로 만나 대화할 때 물꼬가 트이는 것이다. 다른 것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7.4남북 공동성명과 6.15 공동선언의 기조에 근거해 만나 소통하면 될 일이다.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신은미는 북한 사람이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에 호기심을 갖고 첫 북한 여행길에 올랐다고 한다. 첫 번째는 부부만의 방북이었으니까 개인 여행에 속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여행은 2012년 4월 '세계친선예술 봄 축제'에 재미동포 예술단의 일원으로 다녀왔고(단체 여행 성격), 마지막 세 번째 같은 해 5월 세 쌍의 미국인 부부와 신은미 부부와 재미동포 1인 등 모두 9명이 한 팀이 되어 방북했으니까 그룹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북한을 방문하고 느낀 결론은 '어쩌면 우리와 이토록 똑 같을까'라는 동질감이었다고 한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북한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이빨은 드라큐라처럼 날카로우며 몸 전체가 붉은 색으로 물든 괴물로 묘사되었다. 이것은 모르긴 해도 북한이 남한 사람을 묘사할 때도 유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구사하며 비슷한 정서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인다. 

 

이 세 번의 여행이 동행한 숫자와 성격엔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은미 부부가 북한 동포를 경계의 눈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종편 등 극우주의에 찌든 사람들은 신은미에게 종북 이데올로기를 덧칠해 멋대로 재단하고 있지만 그래서 결국 그를 강제 추방하고 말았지만, 그의 방북기를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신은미가 북한 체제를 옹호했다거나 북한이 낙원이라는 취지의 서술을 찾을 수 없다. 한국 사람의 특성 중 하나를 싫으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측면을 드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지만 북한 문제에 이르면 그 정도가 더 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은 여간해서 바꾸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다. 남녀노소, 지식의 유무, 계층의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만큼은 이론(異論)이 틈입할 여지가 없다. 북한을 혐오하는 극우주의자들은 북한 체제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이성적 접근과 논리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무조건 싫다는 것이다. 사람은 고도 문명의 21세기에 살고 있되 사고는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격이다.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북한에 대해 본 대로 느낀 대로 써 내려간 글이다. 기행문이라는 것은 원래 주관성이 강한 글이어서 독자 전체에게 만족을 주기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신은미의 이 책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글은 북한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 비판 비난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글일 테니까. 하지만 이런 시각은 통일을 막는 벽을 더욱 두텁고 높게 쌓는 것밖에 안 된다. 지은이 신은미는 분명하게 말한다.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 남과 북, 한민족은 서도 보듬어 안아야 한다고. 남은 왼쪽 다리를 북은 오른쪽 다리를 서로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런 점에서 학자나 작가가 쓴 다른 방북기와는 달리 평범한 주부로서의 소박함과 따뜻함이 책에 서려 있어 호감이 간다.  

 

모르고 하는 무조건적 비판보다 알고 하는 건설적 비판이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줄 때가 많다. 나는 신은미의 글을 통해 미처 몰랐던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북한에도 휴대폰이 대중화 되어 간다는 것, 즉 그가 처음 방문했을 때(2011년) 휴대폰 가입자가 80만 정도인데 그 해 말께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소식(46쪽),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49쪽), 신혼부부들이 결혼식 날 예식을 마치고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가 혁명열사릉이라는 사실(260쪽) 등.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이다.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와 조국을 염려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해 아름다운 일임이 분명하다. 이른바 공동체 의식이다. 개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서구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효 사상 등 정신 영역의 가치를 높이 사 연구의 주제로 삼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은이 신은미는 전통적인 보수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이라고 한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그가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민주당의 오바마가 아닌 공화당의 보수 후보 존 매케인에게 투표할 정도로 보수적 사고에 젖어 있었다. 크리스찬인 그의 신앙도 보수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방북기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런 시각 안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다만 인간의 보편적 심성인 인정과 사랑의 눈으로 북한 주민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신은미를 종북 인사로 낙인을 찍어 강제 출국시킨다는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작태일 뿐 반대쪽을 불용하는 허약한 정부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건강하고 자신 있는 정부는 국민의 다양한 생각들을 보호하고 그것을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에 비해 나약한 정부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생각을 규제하고 배척하며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나는 지금의 이 정권이 바로 후자쪽에 치우쳐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미를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선남선녀 중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적 색채를 갖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책 곳곳에는 그의 보수적 사변(思辨)들이 산견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는 출퇴근 길 사람들을 보고 초라함과 고단함 그리고 무력감을 느꼈고(71쪽), 6.25전쟁 때 북한을 지원한 중국군을 '중공군'으로 표현한 것이라든지(156쪽), 대동강 변에서 목격한 쉬지 않고 쏘아대는 축포(불꽃놀이)에서 '적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이렇게 응징할 것'이라는 섬뜩한 이념성을 느낀 것(210쪽), 볼거리가 많은 평양 장마당 구경이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섞인 마음(353쪽) 등등.  

 

신은미는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보수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 세 번에 걸친 북한 방문에서 그는 늘 자신이 크리스찬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가난의 땅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북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려고 애쓴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우리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을 의식한 듯 남북뿐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 싸우면서 원수로 살아서는 안 된다면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도 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상대를 용서하고" 나아가 "원수도 사랑하라"고(80쪽). 과연 예수님께서 지금의 남북 대치상황을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북한을 무찔러 적멸(寂滅)할 대상으로 생각하실까 아니면 구원의 대상, 사랑의 대상으로써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실까.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극우의 외눈을 가진 사람들은 이 점을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큰 의미를 부여한 것 중 하나는 평양의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첫 번째 여행 때는 금수산태양궁전(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을 참관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어 예배가 끝난 뒤 봉수교회에 도착했다. 그 이듬해 세 번째 방북 때는 시작 전에 교회에 도착하여 처음부터 온전히 예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는 목사님의 부탁으로 특별 찬양까지 하는 기쁨을 누렸다. 진정한 예배는 북녘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교회도 그렇고 사찰도 그렇다. 관광객을 위해 목사와 승려로 위장한 사람들을 배치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남쪽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신자들조차 동원된 사람들로 이해한다. 신은미의 남편도 봉수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 목사님에게 "이 교회 진짜요 가짜요?"라고 물어 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곳에도 우리와 같이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지은이는 보고한다.  

 

남북통일은 민족 구성원 다수의 염원이다. 그 방법에 있어 다소의 차이가 날 뿐.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평화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 남북 분단은 많은 애국자를 양산했다. 극우도 진보도 모두 자칭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단을 전제로 한 애국심은 진정한 애국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애국이 진정한 애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애국심은 민족 통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은 국제적 역학관계까지 흐트러뜨릴 만큼 역동적인 힘을 내재하고 있다. 이것은 미‧중‧러‧일 등 강대국들이 염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만큼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이 우리의 통일을 바라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한다.

 

통일은 남북의 동질성을 회복시켜 갈 때 가능한 것이요, 그 동질성은 남북이 서로 호혜의 정신으로 사랑의 마음을 갖고 대할 때 가능한 것이다. 신은미는 그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을 가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사랑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다. 그 대상은 특정해 있지 않다. 누구든 예외 없이 그 대상 안에 들어온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백보 양보해서 북한을 원수들이 사는 나라라고 치자.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신은미는 시종일관 이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 신은미는 북한을 그렇게 결론 맺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 온다. 미워하는 사람도 시나브로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북한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생각의 변화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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