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내가 이런 책을 더디 손에 잡은 것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리라. 나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쇄 출판문화가 위축되는 경향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책의 효용 가치는 인터넷의 발달과 무관하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고 늘 그렇게 주장해 왔다. 

한 보름 전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인천 친구 목사님 집에서 하루를 묶고 왔다. 그 목사님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독서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책의 힘이 정말 대단해서 문제아들도 그 목사님의 독서 클리닉에 참석해서 함께 하면 건강한 청소년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듣고 보면서 이 시대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가 그 때 한 권 뽑아다 준 책이 바로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이다. 나는 누가 권하는 책은 이상하게 잘 안 보는 습성이 있다. 아마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해 온 독서 경향 탓이지 않나 싶다. 또 책과 독서에 대해서라면 혼자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만심이 그렇게 만든 것도 같다. 따라서 이번과 같은 경우에도 친구 목사님이 권하는 책이니까 꼭 읽어봐야겠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내 서재에 꽂혀 있은 지가 반 년 가까이 되었다. 지난 추석이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가족을 인솔해서 고향 방문길에 올랐다. 이지성이 쓴 이 책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예년 같지 않게 책 읽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형님 댁에 이틀 머무는 동안 예기치 않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년 12월에 결혼하는 조카가 신랑 될 사람을 데리고 와서 소개시켜 주었고, 또 생각하지도 못한 고향 손님들이 들이닥쳐 다른 즐거움으로 시간을 보냈다.

정작 이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추석을 쇠고 집으로 돌아와서 읽게 되었다. 권한 사람을 생각해서 정독을 하기로 맘먹었다. 책이 점점 손에서 멀어져 가는 현실에서 독서에 대한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책은 몇 가지 의미가 덧붙여져야 할 것 같았다.  사이버 공간이 사람들을 옭아매는 풍토에서 독서, 그것도 고전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가 먼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세상이 변해도 책 읽기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느낌은 어쩌면 당연하다.  

저자 이지성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저자가 동서양을 넘나들며 독서 관련 사항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아마 이 책에 등장시킨 사람들을 세어본다면 백 명은 훌쩍 넘어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들이 쓴 어렵다는 고전까지 요소요소에 인용하고 있으니 저자의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이 정도의 책을 써나가려면 언어도 몇 개는 기본적으로 통달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 독어 불어에 일본어 한자까지 독해할 수 있는 정도, 특히 젊은 저자로서 한자에 대한 이해가 넓고도 깊은 것 같아 호감이 갔다. 서구화 바람이 세차게 분 지가 오래 된다. 영어 불어 독어 등 서양 언어에 비해 한자가 홀대받고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인지 모른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글만의 표현으로 정확한 개념 전달이 어려운 경우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함으로써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자 아닌 영어 등 서양 글자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 환경에서 중국의 고전인 사서삼경에 각종 역사서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남긴 고전까지 전방위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책에서 사유의 풍성함을 맛보는 기쁨은 결코 적지 않다. 그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독서는 저능아조차도 천재로 만들어 주고, 열등생을 우등생으로 만들어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존 스튜어트 밀을 등장시켜 독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들은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었는데, 독서 그것도 고전을 읽음으로써 세기의 천재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세 개의 부록이 책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1장에서는 인문고전 독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가문과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다면 구체적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2장은 세기의 천재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인문 고전에 정통할 정도로 그 방면 독서에 열정을 쏟아서 그 방면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3장에서는 전 세계 0.1%의 사람이 90% 부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0.1%에 속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고전에 대한 공부를 꼽고 있다.

4장에서는 세계사를 들고 놓았던 사람들을 등장시켜 인문 고전의 가치를 제고해 주고 있다. 가령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우리나라 조선조의 세종대왕,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공통점은 인문 고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재벌을 대표하는 이병철과 정주영도 체계적인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인문 고전을 꾸준히 탐독한 것이 그들의 회사 경영에 밑받침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중국의 고전인 논어와 손자병법 등을 읽는 척만 하지 말고 제대로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5장에서는 인문고전 세계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타이틀로 어렵게 생각되는 고전이지만 그것을 한 권 뗌으로써 인생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달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인문 고전을 읽을 때 원전을 직접 읽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고전에 대한 해설서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에서 해설서들은 원전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며 피할 것을 권한다. 6장에서는 인문고전 독서법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책의 말미에 붙어 있는 부록은 군더더기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부록에 꼭 필요한 것을 수록해 놓았다. 즉 인문고전 독서의 필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해왔는데,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도구들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부록 3으로 철학에서 경영에 이르기까지 각 영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문고전 독서가 60명을 간단히 소개해 놓았다. 세기의 인물들 치고 인문고전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다 보니 당위론 원칙론적 입장에서 그 중요성을 설파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인문고전 독서 이론서답게 글의 논거를 꼼꼼하게 미주(尾註)로 처리하고 있어 관련 내용을 보충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그만큼 논지가 탄탄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주로 처리한 책들이 모두 번역된 것들이기 때문에 언어상의 두려움 없이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저자의 성실성과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이 책에 대해 몇 가지 관견(觀見)이 없지 않다. 먼저 부분적이긴 하지만, 내용의 넓이에 비해 깊이가 뒷받침 되지 않고 있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저자는 인문 고전을 원문으로 읽을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인용한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들로 채우고 있다. 물론 가이드에 방점을 둔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이 책이 더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그렇다 보니 문장이 추상적으로 흐르거나 결과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의 중복, 결과의 반복 설명으로 흐르는 경향이 가끔 눈에 띈다.

가령 해설서의 오류를 설명한 부분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인문고전을 읽다보니 체계가 저절로 잡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도 추상적으로 흐른 점이 없지 않다. 저자의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최근 중국의 유명한 교수가 쓴 동양고전 해설서를 읽었는데, 나는 그의 몇몇 의견, 특히 묵자에 관한 부분에서 치명적인 한계와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옛날 같았으면 그 교수의 의견에 압도되었을 것이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인문고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207쪽).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다보면 플라톤을 읽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온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읽기를 중지하고 플라톤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플라톤을 읽다보면 프로타고라스라든지 파르메니데스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모르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온다. 결국 플라톤 읽기를 중지하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다."(208쪽)

위 첫 인용 글에서 말하고 있는 묵자의 치명적인 오류와 한계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여기서 간단히 밝혀 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봉사요 예의이다. 또 뒤 인용 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다가 플라톤을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온다고 했고, 플라톤을 읽다보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대표적인 예라도 하나 들어주는 것이 책 내용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될 것이다.

인문고전 도서를 권장하는 이유가 처세술, 성공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이미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18시간 몰입의 법칙] 등 처세술에 해당하는 책들을 출간해서 히트시킨 바 있다. 물론 경쟁을 법칙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체세술 성공학은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 세계적인 딜러들을 등장시켜 이들이 성공한 것은 인문고전으로 사고를 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이것은 자칫 오랜 세월을 거쳐 인증 받은 인문고전을 자본주의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다. 인문고전은 성공을 위한 처세술용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사랑의 에너지원으로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고 주장하는 것이 구구절절이 옳다. 하지만 당장 고전 한 권을 정독할 작심을 한다고 해도 완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인문고전은 당위론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좋은 줄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기 힘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의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인문고전을 전적으로 공부하는 대안학교를 만든다든가 또는 정부 주도로 인문교육 학습관 등을 설립하여 자라나는 세대를 교육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 출간으로 이지성은 큰일을 해냈다. 평자가 주문한 것은 인문고전 독서를 가이드하는 저자의 몫을 훨씬 벗어나 있는 조직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앞으로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에서 제기한 것이다. 몇 가지 지엽적인 지적을 했지만 그것들이 이 책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완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문고전을 읽고 인성을 살찌워서 우리의 인격뿐만 아니라 국격(國格)도 한 단계 높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진국은 경제적 성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과 문화 가치가 그것에 따라주어야 한다. 정신과 문화 가치 향상에는 인문고전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