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 - 안재웅 목사 회고록 기독교 민주화운동 인물 8
안재웅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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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희망 사항이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책을 남긴다. 간혹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은 전문 작가가 대신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온 안재웅 박사가 자신의 전기를 펴냈다. 이것은 안 박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달리 해방 이후 기독교운동 전체를 망라한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책에는 크고 작은 사건과 인물들을 수없이 등장시켜 사람을 끌어들인다.

1940년생이니까 8순(旬)이 넘은 연치를 가지고 있지만 안 박사는 영원한 현역이다. 육신적으로 건강하니까 가능할 것이고 그것보다 지니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파릇파릇한지 후배인 우리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노년을 나이로 따질 게 아니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회고록의 제목은 다소 묵직하게 다가온다. <역사가 내미는 손 잡고>(대한기독교서회), 제목은 글의 내용을 함축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 내미는 손은 사람이 맞잡을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손을 뿌리치고 자기만의 삶에 매몰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안 박사는 역사가 손을 내밀면 1착으로 달려가서 맞잡은 사람이다. 회고록 속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사건은 역사적 가치가 알알이 녹아 있는 것들이다. 거기에 손잡은 안 박사를 비롯한 인물들의 혜안도 매우 역사적이다.

역사적 가치라고 했지만 국민이 주체가 되어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에 비중을 두고 한 말이다. 국내에서만 해도 KSCF, 전태일 분신, 유신 반대, 민청학련 사건, 3.1명동민주구국선언사건, YWCA위장결혼식사건 등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기 위한 몸부림들이다.

안 박사님은 국내를 너머 외국에까지 그의 기독교적 역량을 넓혀갔다. 활동의 영역이 그만큼 넓었다. CCA-URM, CATS, WCC 활동 등에서 그는 순종과 겸손의 자세로 맡은 바 사역을 감당했다. 여기서 안 박사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서반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었다. 이것은 만국 공통어가 아닌가?

그의 활동 영역이 넓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활동도 전방위적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을 맡아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기획 연구하여 자료를 제공했다. 각 대학 강의와 방송 활동으로 쉴 틈이 없었다. 그의 학적 역량을 생각할 때 사회운동의 길이 아니었다면 상아탑에 안주해 후학을 길러내지 않았을까 싶다.

안 박사의 회고록을 받았을 때 솔직히 약간 부담이 되었다. 700쪽 분량의 부피가 먼저 위압감으로 다가왔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책의 부피와 독서 욕구는 반비례한다는 것. 하지만 깔끔한 성격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인자하고 자상함이 이런 위압감을 날려버렸다.

책을 손에 잡는 순간, 술술 빨려 들어가더니 책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언제 시작했나 했더니 책의 중간쯤에 눈이 가 있었고 또 시간을 의식하지 못했는데 책의 뒷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쉽게 씌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학술서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탄탄한 자료가 뒷받침하고 있다.

회고록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사건들과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기독교운동뿐 아니라 사회운동에 관계한 수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운동의 분화가 적을 때여서 흐뭇한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지금은 정파를 달리하여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80성상을 한 길을 걸어온 안 박사의 삶이 단연 빛날 수밖에 없다. 왜 안주하고 싶을 때가 없었겠는가. 왜 유혹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세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그 힘이 주님의 제자라는 믿음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안 박사는 표나지 않는 참믿음의 사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대강의 목차를 소개해야겠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출생부터 대학과 군 생활을 마치고 기독교 사회운동에 뛰어들기까지, 2장은 기독교운동 단체의 실무자로 헌신할 때의 활동상, 3장은 기독교 리더로서 사회운동과의 연합 활동, 4장은 에큐메니칼의 외연으로서의 국외 활동 등이 세밀하게 기술되어 있다.

5장은 미국 유학 생활, 6장은 CCA 등 국제단체 활동과 강의 방송 활동, 7장은 CCA 총무로서 다양한 활동과 제 3세계 지원, 8장은 사회적 기업 설립과 대학 강의, 9장 에큐메니칼 운동 및 WCC 행사 준비, 10장 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그의 삶은 '움직임(movement)'이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다.

부록도 자료로서의 중요도가 높은 편인데, 한강희 박사의 논문 "평화운동으로서의 에큐메니즘:신계(新界) 안재웅의 에큐메니즘과 평화공동체 구상"은 안재웅 논(論)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네 개의 설교문·연설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영문으로 되어 있다. 글로벌 리더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회고록이 출판되기까지 수고한 사람들이 있다. 먼저 '안재웅 목사 회고록 출판위원회' 위원장 권호경 목사를 비롯하여 27명의 출판위원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사회운동의 선상에서 또는 학문의 여정에서 만난 동지들이다. 연면히 이어져 온 끈끈한 정이 안 박사 회고록 출판으로 결정(結晶)되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면면이다.

이 회고록을 출판한 곳은 대한기독교서회이다. 얇지 않은 책을 멋지게 출판한 것이 돋보인다. 꼼꼼히 읽으면서 오탈자를 찾았지만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전통의 기독교서회답다. 두터

운 책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염려 마시라. 이 회고록은 금아의 수필집을 읽을 때처럼 재미와 속도감을 누릴 수 있다. 정신과 신앙을 채우는 보고가 될 것이다. 기쁘게 일독을 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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