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변호사 1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10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변호사들은 그런다고 한다. 고객과 상담할 때 '저와 얘기하는 것은 시간당 얼마입니다. 지금부터 시간을 재겠습니다'라고 말이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힘없는 사람을 위해서, 법의 정의를 위해서 법학을 배우고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이 미국에서도 희귀종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옳고 그름은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송사(엄청난 사건일수록 좋다! 수수료가 천문학적이니까)에 끼어들어 무조건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 연봉 10만 달러를 넘기고, 또 연봉 100만 달러를 향하여!'라는 목표를 향하여 질주하는 변호사들. '세상이여, 복잡해져라. 그래야 우리의 존재가 빛날 테니까. 사람들이여 서로 물고 뜯어라. 우리가 있잖은가. 법에 호소하라. 우리 전문가가 있다.' 이런 것들이 대부분 변호사들의 속내가 아닐까?

소설 '거리의 변호사'의 주인공인 마이클 브록도 그런 변호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변호사 생활이란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지만 얼마든지 그것들을 참을 수 있다. 장래를 보장해줄 돈을 벌 수 있으니까. 힘들 땐 현재 자기의 연봉이 얼마인지, 내년이 되면 얼마나 오를지 계산해본다. 이런 생활을 몇 살까지 하고 은퇴를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는 진짜 자기의 삶을 산다. 브록은 이런 생각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명은 예기치 않게 변하는 것. 브록은 정말 생각지도 않은 사건 때문에 인생의 가치관이 변하고 만다. 로봇이 프로그램된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움직이듯이 서서히 그의 머리에는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따위 대신 다른 프로그램이 입혀져간다.

브록은 자신을 비롯해서 로펌의 동료들과 한 노숙자 강도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는데, 그 노숙자가 원래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끼고, 지금까지 거만하고 완벽해 보이던 동료, 상사들의 모습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보게 되고, 노숙자가 허망하게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브록은 이 사건 이후에 노숙자들을 다시 보게 된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깨닫는다. 전에는 단지 그들을 게으르고 인생에 대해 향상의욕이 없는 사람들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있으며, 인간 사회에는 잘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록은 노숙자들의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더 법을,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연봉 10만 달러의 풍요로운 생활을 포기해야 하며, 연봉 100만 달러가 보장된 미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뜻이 맞지 않는 의사 아내와 헤어져야 한다. 남을 위해서 일하기엔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존 그리샴도 변호사였다. 처녀작 '타임 투 킬'을 탈고하고 출판을 위해 다섯 곳의 출판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No!'라고 거절을 당했을 때 그리샴은 어떠했을까? 그리샴은 왜 그랬던 것일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 배고픈 직업이다. 미국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런 그가 '보장된' 변호사생활 대신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그가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인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가 베스트 셀러가 될 줄 알아서 작가가 되려고 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을 통해서 정의를 알리기 위해서, 그의 후속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라는 도식적인 동기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단 하나 그도 뭔가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추구했으며, 그 방향은 옳은 것이었으며, 그의 의지대로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존 그리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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