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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의 비극
가토 다이조 지음, 오근영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 아들은 소위 '착한'아들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착한 아들 두어서 좋겠다고 하는데 나는 영 마땅치 않았다. 무엇을 물어보면 '엄마 맘대로 해.'하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가 부모인 나를 믿고 따르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이에게 무엇이든 강요하는 부모인가? 나도 헷갈리면서 이런 고민을 안겨준 아이에게 괜히 부아도 나고 걱정도 되고... 내 아이가 무기력하고 자신감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나는 진정 바라지 않는데...
그래서 아이를 위해 읽기 시작한 이 책.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가슴이 멍멍하고 상기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은 내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소위 얌전한 모범생으로 자라왔던, 그래서 남모르게 가슴 속에 분노를 키우고 의존하며 자신감 없이 성장해왔던 내 이야기가 낱낱히 파헤쳐져 있었으니 말이다. 어른으로 자라 다양한 상황, 관계들을 겪으며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기회가 많았지만 이 책은 막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던 것들을 투시된 사진처럼 적나라하게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저자 자신의 아버지와의 비뚤린 관계를 예로 들고 있어 공감의 폭도 컸다. 그리고 한 아이가 온전하고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부모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하며, 아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많은 성찰과 반성과 용기의 시간이 필요한가 생각하게 했다.
우리 부모들은 대부분 희생의 삶을 살았고, 유교적 가부장주의는 부모가 자식에게 권력이 되는 것을 허락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 종속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효'라는 올가미는 자식들을 옥죄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권력이 된 부모에게 밀착하고 의존하는 것. 그러면서 온전한 사회인이 되는 것... 그렇지 못하면 부모께 죄스럽고 자식으로서 누를 끼치는 것이기에...때로는 부당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것...
씁쓸하고 안타깝지만 이게 내 모습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고, 결혼 후 만난 새로운 가족과의 경험으로 날 지배했다. 부모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얼마나 나 자신의 성숙을 방해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헛되게 소비하게 했나. 이 책은 나 자신과 주변 가족들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게했다. 가슴 아픈 일, 관계들은 앞으로 내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숙하도록 도울 것이다.
난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진정 건강한 자아를 선물로 주고 싶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기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나도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는 존재임을 즐기고 싶다.
'백억짜리 자신감'을 아이들에게(난 딸도 있다) 선물로 주고 싶다. 그들 삶의 첫 단추인 부모. 자아가 건강한 성숙된 부모가 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귀한 선물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