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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
홍신자 지음 / 열림원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날씬한 판형. 자주와 검정색을 대비시킨 후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 표지를 가득 채운 글씨가 매력적인 책이다. 본문의 굵직굵직 커다란 활자도 이채로웠는데 그 낯선 느낌은 곧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는 홍신자 씨의 춤의 일생이 담겨 있다. 그간 출판된 그의 책들을 꾸준히 찾아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야 내가 그의 춤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열정과 솔직함이 좋아서 그의 삶 전체를 꿰뚫는 자유와 구도의 정신이 좋아서 그의 글들을 쫓으면서도 정작 그녀 자신인 춤을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불어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임신한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무대에서 춤을 췄다는 나이 마흔의 무용가의 이야기였다. 온갖 편견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학교와 교과서의 틀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순진한 여학생에게는 놀랍기만한 이야기였다. 한편 내가 좋아했고 또 닮고 싶었던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에는 그 무용가에 대한 존경과 감동이 가득했기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는데. 무용가 홍신자 씨는 여학교 시절 혼란과 의문을 한번에 던져준 이름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그 여학생은 여학교 시절 불어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다. 세월따라 홍신자 춤의 무엇이 선생님에게 감동을 주었을지 알 나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내게 이야기 한다. 내면의 울림과 이야기, 느낌이 몸짓이 되고 자연과 교감하고 우주와 하나가 되려는 그녀의 춤을. 그녀에게 있어 '구도'와 '춤'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한 몸이라는 것을.
이 책이 나 자신에게 미친 영향이라면 지금껏 잊고 지내왔던 내 몸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다는 것. 그리고 제대로 귀기울이지 않았던 내 내면의 소리를 생각하게 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 몸은 움직이거나 일을 하거나 본능을 해결하는 도구로서만 기능하고 살았다. 내 몸도 느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 내 몸짓도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 몸에게 한번도 말을 걸지 않고 무시한 채 노예처럼 부리고 군살만 찌운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내 내면의 느낌, 소리에 귀기울여,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너무도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그냥 흐느적거리며 나이만 먹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 내 속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진정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 해 줄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 좋아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