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란 말은 싱그러운 꽃처럼
풋풋하고 생동감을 안겨줍니다.

마치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마시는 한
모금의 시원한 샘물 같은 신선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 할 일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하루를 설계하는 사람의 모습은
한 송이 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그 사람의 가슴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늘 또한 어제와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미련이나 바람은
어디로가고 매일 매일에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결코 살아 있는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처럼 쓸쓸한
여운만 그림자처럼 붙박여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오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미래로 가는 길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로운
일들로 발목을 잡는다해도 그 사슬에 매여
결코 주눅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오늘이 나를 외면하고 자꾸만 멀리 멀리
달아나려 해도 그 "오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밝은 내일이란 그림의 떡과 같고

또 그런 사람에게 오늘이란 시간은
희망의 눈길을 보내지 않습니다.

사무엘 존슨은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서 더욱 짧아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늘 공평하게 찾아오는
삶의 원칙이 바로 "오늘" 이니까요. *^^*

- '아침에 행복해지는 글'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머리가 하얗게 센 낯선 노인이 공원 나무 그늘 밑 벤치에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땅거미가 지고,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나 인적이 뜸해졌는데도 노인은 그곳에 그렇게 계속 앉아 있었다. 공원관리인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댁은 뉘시오?”
“어디서 오시었소?”
“어디로 가는 중이시오?”

노인은 관리인의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이렇게 답했다.


“만일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그 결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아서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라고 한다는 사실뿐이오.”

최근 세계화 및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나날이 새로운 인간형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인간형은 바로 레이더 형이다. 마치 상품이 규격화되듯이 모든 사람이 개성을 잃고 남들은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디로 놀러다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수집하는 레이더형으로 동질화되고 있는 것 같다.

레이더형은 외부지향적이다. 개성도 없고, 목적의식도 없어서 남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유행을 무조건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축구장에 몰리면 나도 축구장에 가야 하고, 무스를 바르면 나도 발라야 직성이 풀리고, 바캉스를 가면 나도, 복권을 사면 나도 복권을 사야 한다.

레이더형은 매스인이다. 주체성이 없다. 매스컴의 상품 광고를 무조건 따르는 무명인이다. 얼굴도 비슷하고 성격차도 별로 없다. 레이더형은 또 불안 속에서 산다. 유행을 따를 수 있는 돈이 없으면 불안해진다. 남이 갖는 고급 승용차나 콘도를 못 가질 때에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정보화는 레이더형 인간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레이더형 인간인 우리는 모두가 똑똑한 바보들이다. 우리는 사회, 조직체의 일원으로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정보를 활용하며 자기 자신을 매니지먼트하면서 생활한다. 조직 내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수시로 조직이 설치해둔 레이더를 살펴보며 레이더에 포착된 것을 보고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것을 실행에 옮기고, 그 실행의 결과를 당초의 목표와 비교하고, 또다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동원한다. 그래서 대학도 가고, 사장도 되고 이사, 부장, 국장, 교수, 변호사도 된다. 우리는 모두 영리한 합리주의자이며 훌륭한 매니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남들이 가는 길에 합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심신이 지치고 무거워져서 막상 자기의 인생항로에 대한 매니지먼트에는 소홀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기 속에 무엇이 있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면서 그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어떻게든 남들처럼 살아보겠다고 버둥거린다. 그러니 우리들은 모두가 똑똑한 바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3'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형은 병원의 심장병 전문 병동에서 의식 불명인 상태로 누워 있었다.

튜브와 전선들이 형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형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형을 기계에 연결시키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서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물결 선을 그리고 있었다.

병실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라곤

형의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펌프가 내는 '후쉬-'하는 리드미컬한 소리뿐이었다.

목사로서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종종 만나왔다.

나는 그때마다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말들, 완벽한 성서 귀절들,

희망을 주는 문장들을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힘든 기간 동안 형수님과 나는 희망과 포기사이를 오락가락 했다.

우리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의식 불명의 잠에서 깨어나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또한 슬픔의 시기에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들이 들려주는 사려 깊은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들이 우리를 염려해 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았다.

하지만 많은 방문객들은 말하면서 문을 들어와 말하면서 문을 나갔다.

나 역시 다른 사람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들에게 뭔가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항상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형의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우리와 함께 침대 옆에 서서 형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갑자기 감정을 수습하고 그가 말했다.

"아, 정말 안 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마침내 그는 형수를 껴안더니 돌아서서 나와 악수를 했다.

그는 필요한 것보다 몇 초 정도 더 내 손을 잡고 있었고 평소보다 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그의 눈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떠났다.

일주일 뒤 형은 숨을 거두었다.

여러 해가 흘렀지만 난 아직도 그 방문객을 기억한다.

그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가 어떻게 우리의 슬픔을 나누었는가를 결코 잊지 않는다.

조용히 진심으로 꾸밈 없이 그는 단 몇 마디 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한 권의 책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다.

 

출처 : 로버트 j 맥뮬린 2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은 단호한 태도로 참으로 원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만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설사 육지를 헤매든 바다에 떠 있든 소원을 이루기 위해

플러스가 되는 것만을 끊임없이 자기 주위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사고하고 이미지 화하는 뛰어난 능력이 나면서부터 주어져 있다.

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어떻게 소원을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신념이란 바꿔 말하면 생각하는 힘이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 막연한 소원이

어느새 강한 소망이 되고, 거기에 "반드시 실현한다"는 기대가 가미된 것

그것이 바로 신념이다.

이 신념이 성장해 가면 갈수록, 즉 강한 소원이 생겨나

끊임없이 견지되고, 확고한 기대에 차 있을수록,

구하는 것이 가까이 끌려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정신적인 것에서 물질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신념은 본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거기에 의심이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그 힘은 중화되어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념을 굳게 가지고

확고한 기대에 의해 끊임없이 육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념은 모든 것을 유리하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 원하는 그대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 랄프 W. 트라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