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신부 전집 - 전5권
G. K. 체스터튼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누나가 지인으로부터 빌린 후, 오랜시간을 책장 속에서 먼지 옷을 뒤집어 쓴 채 버려졌던 그런 가슴아픈 사연을 지닌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들었던 이유는, 뭐랄까 일단 추리 소설이고 아담한 두께와 크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책장을 하나씩 넘기면서 점차 사그러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 책은 나의 잘못된 예측을 가볍게 밟아버릴 정도로 충분히 무겁다.

 내가 작가인 체스터튼을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쓴 것은 추리소설이되 추리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체스터튼은 추리소설의 틀을 빌려 인간의 본성, 즉 누구나 거부하고 부정하고픈 가장 어두운 그림자, 바로 인간의 악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의 틀을 일정부분 벗어나 있는데, 주인공인 브라운신부는 범죄를 저지른 악당을 결코 단죄하려 들지 않는다.

 추리소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볼품없는 탐정은, 이른바 정의라는 이름의 저열한 판결의 칼날을 세우지 않는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악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악의 주인이 스스로 다시금 악을 깨닫고 선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서 범인을 놓아주기도 하는데, 아마도 브라운신부는 악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지 죄인을 잡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렇듯 사건에서 한발짝 물러나 오로지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추구하는 외로운 신부의 시선은, 항상 인간의 악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형언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는 희망을, 인간의 선을 본다. 가장 높은 곳을 날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고독한 수행자. 이 것이 내가 브라운신부에게 내릴 수 있는 평가이며 이런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체스터튼에 대한 평가이다. 체스터튼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더욱 지독하게 악이라는 존재에 매달려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평가가 너무 후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추리소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것은 추리소설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소설들에 비하자면 약간 지루하고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인간의 악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체스터튼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멋진 소설을 읽은 것이다.

 책의 구절 하나를 인용하고 글을 마쳐야겠다. 이 구절이야말로 이 책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싶다.

 '인간이 보다 선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악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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