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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과 문명 -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빅터 데이비스 핸슨 지음, 남경태 옮김 / 푸른숲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읽는다면 그다지 나쁜 책은 아니지만, 문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지 못한 독자가 곧이곧대로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도그마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너무 심한 왜곡이 책 전체를 뒤덮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분량 역시 상당히 많은 편이기 때문에 구태여 읽기엔 노력이 조금 아까운 책이 아닐까 한다. 책장에 꽂기도 좀 부끄러운 책이 아닌가싶다.
덧붙여 말해야만 할 것은 이 책의 제 9장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 9장에서 저자는 왜곡된 주장을 일삼고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독자가 있을지도 몰라 몇 가지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1. 위에시의 학살 - 저자는 위에시에서 발견된 3천 구의 시신을 예로 들어 베트콩의 학살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이 민간인으로서 학살된 것인지 전투를 벌이다 죽은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현장 취재를 요청했으나 군에서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군의 발표 외에는 이들이 학살되었다는 증거는 더 이상 밝혀지지 않았다.
2. 라오스, 캄보디아에 무력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쟁 내내 금지되었다. - 이 두 나라에 존재하는 호치민 루트를 봉쇄하기 위해 미군은 무제한적인 폭격을 가했다.(그 때 터지지 않은 불발탄 덕분에 지금까지도 라오스 국민들은 해마다 수백 명이 희생당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불발탄이 잠재된 국가가 되어버렸다.) 또한, 남베트남군을 앞세워 직접적인 침공까지 감행했다. 저자는 캄보디아가 공산화 된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비난하고 있는데, 중립적인 시아누크 국왕 정권이 붕괴된 데에는 미국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의 침공으로 인해 발생한 소요는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게 된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3. 1950년대 북베트남에서는 1만에서 10만 명이 처형당했다. - 아마도 토지 개혁 과정에서 일어난 처형을 말하는 듯하다. 1950년 대 초에 시행된 북베트남의 토지 개혁은 그 과정에서 지주 약 2,000명을 처형했다. 이 것은 내외의 격렬한 비난을 불러 왔으며, 북베트남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처형을 금지했다. 이후로 적어도 더 이상의 공식적인 처형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인용된 수만 명이 희생되었다는 말은 남베트남으로 탈출한 북베트남인의 증언에 전적으로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마을에서 죽은 사람의 수로 북베트남 전체에서 몇 만이 죽었을 거라는 짐작을 말했을 뿐이었다. 어떠한 사실 확인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치는 많은 사람들의 의혹을 샀다.
4. 국제사면위원회는 전후 북베트남의 인권유린을 비난했다. - 국제사면위원회는 전쟁 중에 미국 역시 강력히 비난했다. CIA가 '적색분자 색출 및 정보 수집'의 목적으로 실시한 '피닉스 작전'으로 인해 최소 5만 명 이상의 남베트남 사람들(이들의 대다수가 무고한 민간인으로 추정되었다)이 살해당했다. 희생자들은 상습적인 고문, 폭행, 강간에 시달렸으며 국제사면위원회는 미국과 남베트남의 인권유린을 개탄했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거짓이 존재하지만,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2000자 이상 쓰지 못하는 규칙 때문에 나머지는 적지 못했다.) 북베트남의 인권유린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미국의 정책이나 작전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북베트남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