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4월부터 1년 넘게 유통 비정규 노동자로 일했었다. 그 때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쓴 짧은 글들이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내 모습을 결정짓고, 앞으로의 나의 꿈을 결정짓게 만들었던 소중한 것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그동안 쓴 글들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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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풍수 여자들이 모인 곳.

    

                                                         


그녀야말로 우리 엄마다. 저기 저 쪽, 흉물스런 모양새로 굴러다니는 카트를 끌고 내게로 다가오는 저 아줌마, 딱 들어맞는 모양새에 제멋대로 생겨버린 주름까지. 게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움직이며 목 장갑 낀 손으로 재빠르게 몸을 돌리는 모습이 너무나 친숙해서 저절로 얼굴을 찡그려지게 만들 곤 한다. 오늘도 역시 내가 입은 것과 같은 유니폼을 걸치고 목 장갑 낀 두 손을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 여자, 누구더라? 한 달에 한 번 염색을 하지 않으면 좁은 틈 비집고 올라와 무식하게 자라는 흰머리하며, 이 곳 저 곳 안 아픈 곳 없지만 어디 가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낼 배짱 없음하며, 집에 있을 애들 생각에 폐점 시간 전 떨이 행사에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주책하며, 꼭 반풍수(半風水)다.

이 곳, 시장은 시장이되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 할인점에는 내 엄마 같은 여자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아줌마들이지만 죽었다 깨나도 사모님 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하는 여편네들 천지이다. 그녀들은 40대를 넘긴 나이에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도 남들과는 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된 이유인지 이 곳, 할인점에서는 먹혀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기 일쑤이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 내 엄마를 닮은 저 아줌마의 일이었다.


폐점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얼른 이 곳을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재빠르게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던 여자는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렸다. 십분만 늦어도 폐점 전의 떨이는 끝나고 마는데, 목  장갑 낀 손을 오늘따라 더욱 빠르게 놀리며 연신 동동거렸다. 바닥에 쌓여진 울트라 옥시크 린이 진열대로 옮겨지면서 그래, 오늘은 고등어조림이다, 라는 생각까지 여자의 머릿속은 오로지 가야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참으로 별 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젊은 사내놈의 욕질을 안 듣게 생겼다. 이제 딱 이십분만 더 열심히 하자, 설마 그 사이에 뭔 일이 있을까 했지만 그녀는 고등어가 급했기에 개어 오르려는 다른 생각을 뭉개버리고 울트라 옥시크린만 바라보았다. 마지막 옥시크린을 들고 재빠르게 움직이는데 진열대 옆 골목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대 여섯 살의 사내아이가 카트 꼭지에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그래, 왠지 찜찜하더라니. 그 생각도 잠시뿐 여자는 이럴 수 있나 싶은 실망감으로 부글거리는 속과는 반대로 아이의 얼굴을 들어 올려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 꼬마야, 괜찮니? 울지 말고, 자 아줌마가 미안.

뭐가 미안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입에 배인 습관성 말이 또 여지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삼십분만 있으면 퇴근인데. 아니 󰡐30분󰡑까지는 아니더라도 빠르게 움직이면 1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침 평소에 일만 시키던 젊은 사내놈은 보이지 않고 사고자 하는 고등어는 이미 몇 개의 토막으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지체 없이 물건만 받아 나올 참이었다. 그런데 꼬마는 어느 곳에선가 달리고 있다가 하필이면 여자가 정리하고 있던 진열대에 다가와서 부딪쳐 울고 있는 것이다.

- 무슨 일입니까.

제기랄. 지금까지 얼굴 한번 보이지 않던 젊은 사내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맞춰 신용불량자 대하듯이 뱉어낸다. 게다가 머리에 선글라스를 꽂은 제 어미가 나타나 울고 있는 애 손을 잡으며 여자에게 길길이 날뛰고 있다. 

- 이보세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카트를 세워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애가 다쳤잖아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낙진처럼 무겁고 끈끈하게 매끄러운 할인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여자는 솟구쳐 올라오는 화기를 참으며ꡐ참는 일이 뭐 별 일인가, 늘 하는 일인걸ꡑ새김질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 박씨 아줌마. 죄송하다고 사과드리세요. 아이가 다쳤으니 당연히 사과 드려야지요.

- 과장님......저기......

- 사과, 드리세요.

젊은 사내는 날카로운 양복 깃을 매만지면 말했다. 누울 자리보고 발 뻗으라 했던가. 조금 전만 해도 별 탈이 없었고, 또 대개 이런 경우 진열대 바로 앞에 세워 놓은 카트를 보지 못한 아이의 어미나 미처 아이를 발견 못한 자신이나 똑같은 처지일 테다. 그저 서로서로 좋게 넘어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저 어미는 도통 그런 기미가 안보이니 내 펑퍼짐한 엉덩짝조차 반도 못 디밀게 생겼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미소까지 지으며 막내 동생뻘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에게ꡐ과장님ꡑ이라고 존칭해야 하는 것이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여자 애한테 우습게 보일 거라는 생각에 여자는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끝에서부터 열이 솟구쳐 부아를 내지르려는데 뭔가 여자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이 있었다. 어쭙잖은 자신의 배움으로 이리저리 가리는 여자의 풍수쟁이 기질이었다. 내 잘못이든 아니든 어찌 되었건 저 아이와 여자는 손님 아니던가. 나는 죽었다 깨나도 머리 위에 선글라스 꽂을 처지는 못 되지 않느냐. 게다가 여기서 짤리면 갈 곳도 없다. 머리속 재판관의 타박에 여자는 방귀를 끼기 위해 한 쪽 엉덩짝을 들었다가 푸쉬식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뱉고 팔랑거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여자는 무슨 말이든지ꡐ손님, 감사합니다.ꡑ혹은ꡐ손님, 죄송합니다.ꡑ로 응수하는 그 어떠한 엿 같은 상황에도 임무에 충실한 젊은 사내놈이 밉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손님들의 항의에 시달렸으면 아예 대놓고 빚쟁이 인 듯 한 얼굴을 할까. 그래, 순순히 사과하자. 됫글을 가지고 말글로 써먹으려는 내가 우스운 것 아닌가. 마음 속의 재판관이 양심이라고 어디 양심 한번 비틀어보자 싶었다.

- 손님,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순순히 말하긴 했지만 여자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이의 어미 마냥 선글라스를 갖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는데, 뒤돌아서ꡐ되먹지 못한 여편네 같으니ꡑ씹어대며 가버리는 젊은 사내놈 덕에 나무의 우듬지 끝에 매달려 있는 듯 했다. 그랬는데. 나도 내 새끼 손 잡고 매끈한 할인점 바닥에서 우아한 왈츠를 추고 싶었는데 결국 여자는 반(反)풍수였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지? 여자는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배산임수(背山臨水) 명(名)풍수여서 가만히 있어도 고관백작이 드나드는 우아한 자리이든지, 차라리 반(反)풍수라서 아니면 아닌 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짤리면 고등어 한 마리가 날아가는 판국에 어줍잖은 풍수쟁이 기질에 말 그대로 묏자리 망치는 꼴이 되어 버릴 뻔 했던 것이다. 여자도 알고 있었다. 결국 따져 보면 집안 망친 것은 나 아니었던가. 나무의 우듬지 끝에 매달린 참새처럼 살고자 했는데 나무줄기를 꺾어 버린 아줌마가 되었으니. 떼 내도 자꾸만 들러붙는 거머리 같은 자신의 신세는 거무스름한 여자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기미로 내려앉았다.

언감생심, 꾸어서는 안 될 꿈을 꾼다는 것이, 젠장.


유난히 내 엄마 같은 여자들이 득실거리는 이 곳. 울트라 옥시크린을 손에 들도 진열대만 바라보는 아줌마의 유니폼이 수의(囚衣)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사람이 거의 빠져나간 할인점이 뜨내기들이 드나드는 허름한 여인숙처럼 느껴진 탓 일 테고,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뒤집어져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화투장 뒤집듯 세상을 점치려 드는 나의 눈이 저기 어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른 무언가를 향해 재수패를 떼었다. 눅눅하게 달라붙는 흑싸리 껍질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리고 매화 다섯 끗을 집어 들었다.


어디, 끗발 한번 날려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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