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한국사회는 진정한 저질화가 된 것 같다.”

  작년 가을쯤, 조촐한 술자리에서 한 평론가에게 들었던 말이다. 저질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인간답게 우리는 자본과 권력에 이끌려 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지 않고 외부적 상황만을 통해 기계적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게 그가 그렇게 언급한 이유였다. 나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요즘 사회는 필자 같은 백수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우리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소재는 문학에서도 두루 사용되었다. 근대문명이 시작한 이래, 도회는 물질만능주의가 되어가는 사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특히나 사회주의 대표인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같은 극단적인 제목의 논문까지 나올 정도로 자본주의는 어떠한 방해 없이 전 세계로 팽창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졌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올바른 사회를 구축하는 길인가? 필자는 오랜만에 읽는 한국소설을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책 제목은 󰡔열외인종잔혹사󰡕(한겨례출판).


  1부- 당연한 사회에서 당연한 충격이 잔혹하게 낯설다.

  󰡔열외인종잔혹사󰡕은 11월 24일, 단 하루 동안 코엑스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을 중심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서술한 책이다. 작품의 중심인물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네 명이다. 학교는 일찌감치 관두고 되는대로 살자는 PC방 죽돌이(?) 기무(10대), 보통 사람들처럼 하라는 거 다 했는데도 취업 못한 된장녀 윤마리아(20대), 부도난 용역회사와 바람난 아내 덕분에 서울역으로 신세를 지는 4년차 노숙자 김중혁(40대?), 이놈의 사회는 죄다 빨갱이라며 탑골공원 마이너 연설을 하는 전직 월남파병 군인 장영달(70대?). 그들은 이 네 중심인물은 그들의 성격을 최대한 드러내면서 활동한다. 사회를 “냉정하고 비루한 현실”(51쪽)이라고 바라보고, 모든 것은 “시간의 지루함”(71쪽)과 결부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인간인가”(75쪽)라는 비관론까지 펼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중심인물의 직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 어떤 곳에도 소속감을 지닐 수 없는 주변인이며 하위주체이다. 하지만 동질감을 느끼기보다는 “자리는 죄가 꿰차고 앉아 20대의 장밋빛 진로를 철저히 봉쇄”(51쪽)한다며, 혹은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는 “이런 밥버러지 같은 인간 말종들”(79쪽)이라고 서로를 욕하고, 한편에선 “거칠고 상스러운 가사로 무장한”(44쪽) 갱스터랩을 통해 반항하기도 한다. 그들은 책의 제목에 나왔듯이 그저 열외인종일 뿐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이 낯설지가 않다. 나도 백수이기 때문일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한 답은 설명한 앞의 상황이 이미 실현가능한 -아주 현실적인 판타지가 가미될 경우- 사회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중심인물들은 우리가 사회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흔한 인물들이다. (못 믿겠다면 작품 내 인물들의 출발지를 찾아가보시길)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저 하나같이 피곤하고 잔인할 만큼 억눌린 얼굴”을 한 채 “경이로운 무관심”(71쪽)으로 대하거나 “에이 썩은 짬뽕 같은 호로새끼”(142쪽)라고 욕한다. 하지만 실제 가능한 일을 이 책을 읽으며 접했을 때, 우리는 당연한 사회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행동과 충격에 잔혹한 낯섦을 느낀다.


  2부 - 소통의 부재 속에선 가장 친근할 것이 가장 강력한 적이다

  계속되는 사건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우연히, 자신만의 특별한 이유로 11월 24일에 코엑스홀로 모였다. 게임 이벤트, 종교의 카니발, 있지도 않은 고서 외전의 예언, 또 어떤 이는 삼류 예언가의 예언(혹은 알바)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필연성이 그들을 묶은 것이다. 양 머리에 연미복을 입은 테러집단은 코엑스홀 안에 많은 사람을 가두곤 총으로 반동자를 죽이는가하며 일장연설을 하는 등을 자행한다. 이 부분 속에서 중심인물 네 사람은 각기 자기 자신의 생존과 이득을 위해서 움직인다. 기무는 보스를 죽이고자하고, 윤마리아는 끝까지 취업을 붙잡고자하고, 김중혁은 살고자하고, 장영달을 빨갱이를 다 죽이고자하는 모습은 처절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이때 작품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가속도가 붙어 더욱 더 빨라진다) 그러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테러단(혹은 쿠데타 집단)의 모습에 잠깐의 의아함을 느껴졌고, 잠시 뒤 테러단의 두목의 등장과 동시에 윤마리아와의 대화에서 이 사회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소시민의 모습은 부각되고, 그들이 양머리가 되는 식의 정신착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난하고 진정한 구원이 있길 바라는 모습은 절규에 가까웠다. 속도감을 따라서 사회에 대한 의심도 금방 지나가고만 있다. 그리고 김중혁이 코엑스의 불을 밝혔을 때,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모습은 소영웅이라기보다 구원자였다. 어느덧 결말. 양머리의 그들이 아무 소통도 하지 못하면서도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듯이, 기무는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구원자, 메시아 혹은 새 두목에서 총을 쏘았다. (많은 이들이 통쾌함보다는 공허함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은 세대를 넘어 서로가 이해하고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자기 자신과만 소통하는 열외인종으로 남는 결과가 나타났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아무 것도 아닌 듯 살아간다. 그저 기무의 총기발사가 양이 아닌 사람을 죽였을 때의 모습이 참혹할 뿐이었고, 서로 잘 이해하고 가장 친근하게 지낼 것 같은 것이 가장 강력한 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이 시대의 광록(狂錄) 그리고 우리

작품은 끝났지만, 작가는 세세한 특이점으로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켰다. 그 중의 하나가 종교문제. 종말론을 가진 마이너 종교 데이비드교라거나 만리교. 로버트 퍼시그는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하고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끈질긴 핍박 속에서 살아남은 승자(메이져) 종교에 자본과 권력을 덧붙여 신봉하는 자들이 지금의 현대사회에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작가가 숨긴 의도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는 김중혁의 친구 광록. 나는 그의 이름이 왜 광록인 지 읽었다. 미칠 광(狂)에 기록 록(錄). 미친 것들에 대한 기록, 혹은 미친 기록. 뭐, 어쨌든 이정도만 봐도 한 명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그는 바로 미셸 푸코. 그리고 그의 저서 󰡔광기의 역사󰡕. 그의 관점에 본다면 위 작품은 역사에 쓰지 못할 역사를 기록한 책이고, 중심인물들은 에피스테메의 밖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특히 코엑스의 정전 속에 돌아다니는 양머리들(양하면 마르크스․엥겔스가 생각나는 건 이 작품에선 어쩔 수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은 ‘감시와 처벌’을 떠올리도록 한다. 특히 김중혁이 시스템을 파괴하는 양상을 보이나 같은 존재자에게 소멸되는 것을 모두 수긍함으로써, 게다가 다음날 모든 것을 은폐하는 매체를 보고 의심 또은 격분함으로써 에피스테메에 속하는 현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시키기엔 아직 불가능한 시대라고 해석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위주체’ 방식으로 보는 것도 또 그것만의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옥선녀가 예언한 “위선자”라는 말이 마음 한 구석에 걸린다. 위선자. 어쩌면 나도 양의 탈을 쓴 위선자는 아닌가. 더 나아가 우리는 모두 위선자가 아닌가. 기무도 윤마리아고 김중혁도 장영달도 모두 대화하려고 들지 않듯, 우리도 모두 말로만 소통해야한다고 언급할 뿐인 건 아닌가. 어쩌면 사회의 권력과 자본을 동경하고 굴복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시국이 어수선하다. 비록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사회에 필요한 소설은 아닐까(필자가 별로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듯)하여 이렇게 글을 쓴다.


“갖다 붙이면 그만이겠지, 그만일 수도 있고, 카니발일 수도 있어. 그렇지만 중요한 건 말이야. 우린 지극히 평범한 서울의 소시민들이었어. 4대 보험에 가입한 직장에 다니며 아침 8시 반이나 9시쯤 출근해서 7시가 넘어 퇴근하고 접대 명목으로 폭탄주를 부어대던 평범한 직장인들, 아님 학교에서 수능 준비하던 수험생, 모여서 집값 대충 때문에 한숨만 푹푹 내쉬던 가정주부, 은퇴하고 하릴없이 탑골공원이나 쏘다니던 노인들이 바로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었지.”(263-2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