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요 고양이 -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세이
손명주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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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때, 동생이 학교 앞에서 사온 500원짜리 병아리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다. 동생이랑 나는 그 작고 예쁜 병아리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주었다. 작은 생명체를 어쩌지 못해 집으로 지어준 박스 앞에 쪼그려 앉아 움직이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뛰어왔고 눈뜨기 무섭게 병아리 앞으로 모여앉았다. 그러나 학교 앞 병아리의 숙명인 듯 박스 안 병아리의 생명은 오래가지 못했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비실거리던 병아리는 우리의 손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린 나이의 동생과 나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오래 함께 하지 못한 서운함과 우리의 어루만짐이 해가 된 것은 아닌가 염려하는 마음이 뒤섞여 많이 울었다. 동생의 손을 잡고 병아리를 데리고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면서도 울고 병아리가 우리를 떠나고도 몇날 며칠을 울었다. 겨우 일주일 함께 한 것으로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울었다. 내 삶에서 만난 첫 이별이었다.

남매가 며칠을 울어서인지 그 뒤로도 우리집은 철저하게 동물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10년을 함께 살았던 개구리를 빼고) 몇 년을 설득하다 그만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어느새인가 그런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반려동물 키우는 지인들이 부러웠지만 그 부러움이 집으로 데려오는 마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양이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동물들에 대하여 생각해봤다.

펫숍의 고양이나 강아지를 창문 밖에서 귀여워 하고, 가족과 산책을 나온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길냥이나 길멍멍이를 만나면 마구 말을 걸었다. 먹을 것을 건네거나 생수를 건네기도 했고 호의적인 아이들을 만나면 곁을 내어주며 온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 새침한 아이와는 거리를 두고 눈인사를 나눴고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도 놀라서 도망가는 아이를 황망히 바라본 날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내가 키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사라진 책임감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모두를 그저 예쁘게만 바라보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런 마음이 그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펫숍에서 팔리지 않던 고양이 마리와 춥고 배고픈 길고양이 똥키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고양이들의 이야기였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고양이. 예쁜 고양이만 추구하는 소비자.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고양이. 그들과 공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운이 좋게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나 따뜻함을 만났던 마리와 똥키는 행복했을테다. 모든 고양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하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고양이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마리와 똥키의 이야기는 모두 경계심에서 애정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이 애틋하여 마음이 찡했다. 상처받은 사람과 사람 사이도 회복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상처받은 동물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고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감히 상상이 안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조금 알 것도 같다.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방법이라던가,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는 일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가득 채워 놓고 낙나 사료랑 물그릇뿐이야. 사료가 떨어질 때쯤이면 돌아올까? 그럼 내가 다 먹어 치워 버릴까? 아! 근데 사료가 너무 많아. 물도 너무 많아. 기다리다 지친 내 심장이 저 물그릇보다 먼저 마를 것 같아. - P38

엄마는 나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짜증을 내. 그러다가 곧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무릎 위에서 졸고 있는 나를 쓰다듬지. 금방 그렇게 좋아할 거면서. 그렇게 우리는 티격태격 체온을 나누며 매일 행복해 하고 있어. - P42

엄마 아빠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대. 자신들의 다리를 베고 누운 내 털의 감촉이 너무 좋대.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는 고양이의 나른함이 너무 좋대. 고양이와 함께 먹고 자고 노는 그 시간이 제일로 행복하대. - P84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그 사람들이 주는 사료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뒤뜰에 내리는 햇살의 따스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아니,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버렸어. - P101

어쩌면, 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안락함이란 길 위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몰라. - P127

날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뒤뜰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뒤뜰이 앞으로도 다른 길고양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면 좋겠어. 사료 한 움큼, 물 한 그릇이 항상 놓여 있는 뒤뜰이면 좋겠어. 작은 따뜻함이 모이고 모여서 세상의 온기가 되는 거니까. - P150

혹, 마리 이야기가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으로 전해 질까봐 두렵다. 마리는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교배되고 생산되었다. 또한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걸 산 나의 행위 역시 두말할 것 없이 비윤리적이었다. 나 때문에 그 펫숍의 주인은 수익을 올렸고, 그것은 비윤리적인 동물산업의 성장에 일조하는 행위다.

하지만 철장에 전시되어 있던 마리는 아파 보였고, 그건 끝내 판매되지 못할 거라는 뜻이었다. 펫숍은 고양이의 생산단가보다 비싼 치료비를 지출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때 거기 있던 마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철장에 가둔 동물산업에 맞서는 한 사람의 신념이 아니었으니까. 마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를 향해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었으니까.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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