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리엔트 이산의 책 24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다시 동양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느낌을 주는 제목 때문에 미래 예측 서적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책은 대략 1400-1800년 초반까지의 세계 경제에 대한 분석이다. 저자는 이 시기에 이미 글로벌 수준의 국제적 교역 및 분업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중심은 서양이 아닌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이었음을 강하게 역설한다.   

상당히 충격적인 주장이다. 적어도 나에겐... 고대부터 대륙간 교역이 이루어졌던거야 주지의 사실이지만, 과연 이 시기의 규모를 '국제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 경제적 주도권을 아시아가 쥐고 있었다니... 물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 모두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리라 생각한다.

서양의 발흥은 기껏해야 한 두 세기를 지났을 뿐이며, 그 전에는 동양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는 주장 자체가 이 책의 핵심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어떤 이유로 동양이 쇠퇴하게 되었으며, 서양이 발흥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기존의 서양 중심적 역사서술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들이 유럽중심주의에 기초를 두며, 이것이 역사적 사실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유럽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어떤 내재적 요소로 인해 자본주의가 발달했다는 것이나, 아시아적 생산방식이 자본주의 발달에 맞지 않아 동양이 뒤쳐졌다고 하는 주장들은 모두 거짓말이 된다. 

저자는 글로벌적인 관점에서 세계 역사를 볼 것을 주장한다. 아시아면 아시아, 유럽이면 유럽  이렇게 각각의 나무를 현미경만 들이대고 살펴볼 것이 아니라, 망원경을 꺼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라는 나무들이 어떤 상호역학관계를 주고 받았는지 전체 숲을 동시에 살펴 보라고 주문한다.   

책의 두께가 부담이 되고 비슷한 주장의 반복으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천천히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숲의 윤곽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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