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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다. 실버 센류 모음집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음, 이지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노년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불혹이라는 나이가 굴레처럼 느껴지는 날, 어느 피아니스트의 말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이미 오래전 무대에서는 은퇴했고, 나이는 벌써 아흔을 향해 가는데, 처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꾸밈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된 게 여든 중반의 일이며 그때부터 자기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할 수 있었단다. 아직 여든 아흔에도 새롭게 열어 볼 비밀의 문이, 상상치도 못했던 그런 것이 있단 말인가?
그러던 중에 문득 이 책이 눈에 걸려들었다.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을까.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실버 센류를 둘러보았으니 기대감이 있었지만 책은...? 아! 기대 이상으로 사랑스럽다. 나름대로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누적되어 온 ‘실버 센류’ 모음집인 데다, 질곡으로 가득한 어르신들의 삶의 무게를 생각한지라 두껍고 묵직할 줄 알았다. 웬걸, 드러누워 펼쳐 읽어도 행복할 만큼 가볍고 얇고 부담없는 시집이다.
책을 펼치는 즉시 보이는 글자는 뚜렷하고 커서 가독성을 최대한 높이려 한 걸 알겠다. 그 즉시 엄니 생각이 났다. 눈이 침침해서 속상해하시지 않았던가. 분명 반기실 거다! 눈에 좋은 편집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느껴졌다. 꾸밈없는 꾸밈새랄까.. 크레파스 일러스트와 어우러진 한 줄의 시들. 어른들의 사랑방에 앉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일상의 새로운 감각, 낯선 풍경.
그러다 문득 젊은 세대가 지은 센류도 발견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재치와 온기에 놀란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면 모를까,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가는 악의 없는 농담도 조롱으로 몰릴 세상인데, 농담을 농담삼아 나누고 표현할 수 있는 자리, 농담으로 상도 받는 자리, 그런 자리를 마련한 일본 사회의 일면을 또 엿보게 되는 것 같아 살짝 시기하고 선망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듣고 싶어하는 편이지 않은가. 그럴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를, 만들지를 못했을 뿐. 이 책은 바로 그 일을 해내고 또 한편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다.
눈앞의 하루가 깜깜하고 절망적일 때 이 시기를 넘긴 뒤의 나를 상상해 볼 것. 그리고 책 뒤에 수록된 포푸라사(원서 출판사) 편집 후기 속 말처럼, “나이를 먹었기에 보이는 풍경”을 꿈꾸며 이 책을 어김없이 펼쳐 읽어야지. 부모님과 함께 읽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또 펼쳐야지. 분명, 우리 모두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
참참..! 그럴 필요가 있겠냐마는, 시집 속에서 내가 한번 한 편을 뽑아 보자면 싱겁게도 표제가 된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다. 다른 시가 덜해서가 아니라, 의외의 두근거림이 가장 잘 표현되어있으면서도 그 뒷이야기를 무한히 상상하게 만드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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