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연화 첫 번째 이야기
이서정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실제역사를 배경으로 한 역사 로맨스는 많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가상국과 달리 현실역사라는 틀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몇줄로만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서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해내시고, 실제역사의 구속아래서 주인공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하고자 애쓰셨을 작가님(공녀도 에필로그로부터 불과 몇십년 후에 원의 멸망이 예정되어 있지 않나요.)들은 정말 대단하세요.


자, 여기 이서정님이 발굴해내신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사서에 기록된 눌지왕의 왕비는 아로(阿老)부인으로 실성왕의 딸이며 자비왕의 어머니입니다. 눌지왕의 딸은 조생(鳥生)부인으로 눌지왕과 아로부인 사이의 딸이며 그녀의 아들이 지증왕입니다. 눌지는 자신을 핍박한 사람의 딸과 결혼하였고 신라의 왕통을 계승한건 그녀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십년이 넘는 세월, 사위를 죽이려는 아버지, 아버지를 죽인 남편. 두사람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어린 자식들 사이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인터넷 검색결과 찾은 어떤 시나리오에서는 아로부인이 아버지를 죽이는데 관여했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려져 있더군요.

사서속에 숨어있던 흥미진진한 소재를 소설로 잘 살려낸 것이 월성연화의 첫번째 공입니다. 월성연화의 각장 첫머리에는 사서의 짤막한 기록이 발췌되어 있습니다. 그 몇줄에 그럴듯하게 살을 붙이고 전체 이야기속에 조화롭게 자리하게 만든 작가님의 재주가 정말 놀랍더군요. 예를 들어 전술했듯이 작가님은 먼저 실성의 원한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귀아라는 이름을 여주에게 먼저 붙여주신 다음, 초반부와 마지막 에필로그의 현판 에피소드를 통해 그녀의 이름이 사서에 전해지는 아로부인으로 바뀌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셨죠.(특히 아로의 뜻이-실제로는 이두였을 가능성도 높지만-재미있었어요. 하하)  

월성연화의 두번째 공은 이야기로서의 재미입니다. 초반에는 호흡이 좀 느렸습니다만, 내물왕이 죽은 후 눌지가 왕위를 되찾기까지 겪는 에피소드들은 진짜 고난의 일대기, 중반부터는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이리저리 쳐오는 그물을 피하기 위해 나름 온갖 술수를 다 쓰시는 눌지는 귀아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었다면 의뭉스럽다(남주에게 쓰기에 심히 적절치 못한 언어인가요. ㅠㅠ)고 여겼을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어설픈 암투에는 점수를 박하게 주는 편인 저는 나름 흡족하게 봤습니다. 그리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성이 아로궁 문앞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장면 같은 거 말입니다. 부녀지간의 연은 결국 회복되지 못했지요.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야 충분했지만 로맨스로서는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눌지와 귀아 의 경우에는 두사람의 감정선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는 탓에 러브라인이 너무 늦게 시작되었고 미해와 아리의 경우에는 '어린것들이 귀엽구나.'에서 장장 십몇년동안의 이별때문에 그 이상의 진행이 정지되어서 말이에요. 로맨스에서는 보기좋은 커플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가끔씩 여주의 심정에 감정이입하는 재미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그점이 부족했어요. 9살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봐서 그런가, 이 아이들에게는 통 감정이입이 안되더군요.    

장르불문, 재밌는 이야기를 찾으시는 분에게는 권해드립니다. 다만 찐한 로맨스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부족하다 여기실듯.

사서속 몇줄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 보여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