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다

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만약에 내 가족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그 순간 내가 반드시 함께 있을 수 있기를, 홀로 살아남지 않고 다 같이 떠날 수 있기를. 만약에 그런 일이, 혹여나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가족과 꼭 함께할 수 있기를 나는 종종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한 아이가 있다.

눈이 온 어느 겨울의 아침. 미아의 가족이 드라이브를 떠나던 길에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숨만 겨우 남은 미아.
사고 후 미아의 육체는 여러 번에 걸친 수술과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삶을 연명하게 되고,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미아는 사고 전 후 24시간 동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며, 길지는 않지만 행복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락을 좋아하는 음악가였지만 생계를 위해 그 자신을 버리고 교사라는 직업을 택한 아빠
눈빛만 보고도 무슨일이 있음을 알아채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준 엄마
책을 읽어주며 잠재웠던, 금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줄 수 있었던 동생 테디.
자신의 첫 연인인 애덤, 다르지만 자신과 똑 닮은 친구 킴.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의 친구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된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이 살아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미아는 생을 이만 마감할 것인지,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내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한다.   

나는 조용한 중환자실 한구석에서 오늘 지금까지 내가 간신히 무시하고 있던 씁쓸한 일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상에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깨어보니 고아가 돼 있는건 어떤 기분일까? 아빠의 파이프 담배 냄새를 다시 맡지 못하는 건? 엄마 곁에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건? 다시는 테디에게 해리포터를 읽어줄 수 없는 건? 가족 없이 혼자 남는건?
여기가 내가 속한 세상인지 더는 잘 모르겠다. 내가 깨어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미아의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지만, 소설은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 줄리아드 음대 진학을 앞둔 전도양양한 열일곱 살의 첼로리스트. 평온한 삶을 살아가던 행복한 한 가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뉴스에서나,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봄직한 일이지만 우리 역시 갑작스러운 사고에 보호막을 두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건강했던 한 소년이 뜻밖의 교통사고로 시시때때로 병원을 드나들며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목격한 이후 늘 사고라는 것이 나와 동떨어진 일이 아님을 걱정했기 때문에, 소설에서 미아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 남의 일처럼만은 여겨지지가 않는다.

미아 곁에 남은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줘.’라고, ‘남아줘.’라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등에 업고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결국 미아 그 자신이다. 미아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것이 어쩌면 산 사람들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니, 이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어느새 글을 읽고 있는 내가 미아가 되어 미아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하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그만두어야 할까...? 아니면 견뎌내야 할까...". "엄마, 아빠는 어떤 선택을 원하실까?" 정말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부모님이 아신다면 펄쩍 뛰실 일이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가족이 없는 힘겨운 삶으로 다시 들어가자니 나조차도 겁이 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순간, 너무도 끔찍하게 미아는 가족을 잃었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간다는 말이 있듯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생의 힘을 다해가던 미아가 애덤의 손을 힘껏 그러쥐는 것을 보며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싶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