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다이어리 뒤쪽 Note면에는 읽고 싶은 책, 추천 책 목록이 쭈욱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구입하거나 읽은 책은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새해가 되어 새 다이어리를 갖게 되면 그 목록에서 읽지 않은 책을 또 다시 적어 넣는다.
이렇게 기록된 책들 중에 유독 자주 눈에 밟히던 책, 최근 내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증상인 <문학적 건망증>을 이제 드디어 탐독해보자 라는 마음에 검색했보았는데...
알고보니 <깊이에의 강요> 책의 단편 중 하나였다.
깊이에의 강요. 보란듯이 책장에도 꽂혀 있다. 이 책을 읽.었.다.는. 기억은 분명 있는데...
‘그렇다면, 나도 읽은 책이었잖아...(...)’


어제는 직장동료들과 개봉예정인 영화<레드 라이딩 후드> 에 대해 얘기하면서 원작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거 원작 소설이 뭐죠? 정확한 제목이 뭐..더라?
빨간 모자? 빨간 망토? 빨간 모자와 늑대? 빨간 망토와 늑대?
레드 라이딩 후드. 이 영화 판타지 쓰릴러 같던데, 그럼 잔혹동화라는 거에요?
아 맞다. 그거 어떻게 보면 잔혹 동화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왜~ 늑대가 할머니 잡아 먹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늑대 배 갈라서 할머니 꺼냈지 않았나요?
으아 그러면 그거 정말 잔혹동환데요?
아니, 배 가르는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만 나오는거 아니에요?
……

뭐 어쨌든 <문학적 건망증>은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렷다.


그런데 요즘은 문학적 건망증 뿐만 아니라 뇌 주름이 쫙쫙 펴지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기억 수준이 나빠졌다.
워낙에 암기력이나 기억력이 좋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
그게 아니라면 책을 너무 건성으로 읽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깊이에의 강요>, <문학적 건망증>은 읽어봤음에도 책 제목조차 처음 들어봤다 싶을 정도이니 당장에 다시 꺼내 들었다.
몇 해 전에 읽을 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글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


<문학적 건망증>
작가는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고 ‘글쎄. 대체 그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게 된다. 서재에 꽂힌 책을 무작위로 한권 뽑아들고선 읽기 시작하던 그는 마음에 드는 글귀에 그어진 밑줄, 남겨진 코멘트를 보며 이전에 이 책을 읽은 사람과 동일한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데 흥분감을 느낀다.
헌데 그 즐거움도 잠깐. 코멘트의 글씨체가 예사롭지가 않다.
알고보니 밑줄과 코멘트는 작가 자신이 과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남겨두었던 것.
‘이런 책. 이 작가의 책을 정말 내가 읽었던가?’ 하는 의문을 시작으로 작가는 자신의 모든 경험이 결국은 무(無)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끄덕끄덕. 나 역시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진 않는데..
그러면서도 이건 분명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자전적 소설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권위자도 그렇다는데!'라며 위안삼는다.
그리고 작가의 깨달음. 또한 내게 던지는 말.
허둥지둥 글 속에 빠져 들지 말고,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

끄덕끄덕. 블로그를 개설했던 첫 번째 목적도 바로 리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뭐든 기록해두어야겠다는 마음에...
글을 잘 쓰지 못하면 글을 읽은 후 먼저 줄거리를 요약해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는 줄거리 요약 하고, 가끔 내 의견도 덧붙이고 있는 수준인데... '지금은 좀 서투르고 어설플지 몰라도 쓰다보면 요령이 생기겠지.' 하고 있다.

그리고 다짐.
1. 다독해야겠다는 마음에 허겁지겁 글 속에 빠져들지 않기.
2. 연초에만 바짝- 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읽고, 기억하고, 기록에 남기기.
3. 가벼운 정보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그나저나, 내 삶에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일까?...(...)
영화는?...(...)
내가 읽은 그 많고 많은(객관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책들 중 내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만한 책이 없다는 게, 아니 분명 내가 읽은 그 모든 책이 내 삶에, 내 의식에 영향은 미치고 있겠지마는 망설임 없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 할만한 책 한권이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