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공장
데이비드 플로츠 지음, 이경식 옮김 / 북앳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빌 게이츠, 최근래에는 송유근 군 같은 천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을 가슴 떨리게 만드는 동시에 ‘나는 왜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라는 열등감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돈과는 달리 지능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선조에게 물려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이것마저도 가능케 했다. 불임 부부에게 출산의 기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정자 은행은 불임 부부 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에게까지 더 우수한 정자를 선택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제는 천재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경쟁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우수한 자가 살아 남는다’라는 다윈의 철학이 새롭게 이행되고 있으며 이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인간에게까지 적용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어진 그레이엄 역시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은행(실제로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지만)인 ‘후손 선택을 위한 저장고’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한 ‘높은 지능을 가진 열 명이 천 명의 바보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는 주장이 우리나라 모 대기업 총수가 말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역시 그와 같은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탁월함을 만드는데 있어서 유전자는 결코 무시할 바가 되지 못하며(운동가나 예술가 집안을 보라!) 이는 Nature 對 Nurture의 논쟁에서 Nature 측의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지능을 포함하여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특성은 모두 신체와 관련된 것인데, 짐승의 세계 뿐 만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서도 더 나은 신체 조건은 행복을 누릴 가능성을 더 높이는데 기여한다. 멋진 외모와, 탁월한 운동 신경과,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그저 그런 외모와, 박약한 체력과, 집중력이 딸리는 사람보다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는 것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행복하다’는 것은 아닌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IQ 뿐만 아니라 GI를 고루 높인다고 할지언정 그 사람의 행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유전자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유전자란 없다. 그것은 모두 삶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닌,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생학자의 판단 오류는 ‘지능(또는 능력)이 곧 행복을 결정한다’라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후손 선택을 위한 저장고’의 스타였던 도론이 ‘만일 내가 IQ 180이 아니라 100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내 인생을 충분히 잘 살 겁니다. 훌륭한 사람을 단순히 유전자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정자를 받은 어머니들의 교육열이 높았기 때문에 천재의 유전자를 받지 않아도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여 아마 그 사람이 우수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작가의 언급, 그리고 같은 사람의 유전자를 받았음에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 엘튼과 톰의 일화는 이를 뒷받침 한다.

이 책에서는 정자은행으로 태어난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 ― 생물학적 아버지의 스펙에서 밀린 사회학적 아버지의 가내 위상 추락, 다른 사람의 정자를 받아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자식들의 정체성 혼란, 기증자와 어머니와 자식 간의 새로운 가족 관계 형성 등 ― 을 다루고 있지만, 나는 이 책 초반에서 잠깐 다루어졌다가 묻혀버린 우생학자들의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곱씹어 보았다. 과연 그들이 원하는 대로 IQ 60대나 신체 불구자의 유전자는 남김없이 해치워버리고, 최소 키 165cm 이상, IQ 120 이상 등등의 ‘유전자 우수자의 나라’를 만든다면 그 나라는 과연 행복할까? 답은 ‘아니오’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환경이 전자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가르치지 않으면 두 발로 걸을 수도 없다! 환경, 교육, 노력은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과 덜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 간의 예상된 성공, 나아가서는 행복의 정도를 충분히 뒤엎을 수 있다. 때문에 노벨상 수상 여부를 우수한 유전자 보유 여부로 판단한 그레이엄은 틀렸다. 노벨상을 탄 것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한 것과 더불어, 극단적으로는 우수한 유전자를 보유하든지 말든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 나는 ‘사주’를 생각해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절대시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최고의 사주를 타고 났든 혹은 이상한 사주를 타고 났든 간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산다. 설령 몇 날 몇 시에 죽을 운명이라고 사주에서 일러준다고 할지언정 그 날에 맞춰 관을 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유전자라고, 혹은 열등한 유전자라고 자신의 인생을 넋 놓고 보낼 사람은 없다.

시험관 아기와 정자은행 반대 피켓을 들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혹자가 말한 것처럼 카탈로그에서 기증자의 특성에 맞춰 정자를 고르는 흐름은 이제 막을 수 없다. 과학이 점점 발달하면 기증자 한 사람의 유전자를 온전히 받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장점만을 골라 담은 유전자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삶에서 타고나는 유전자가 맞게 되는 변수는 매우 크지만, 그래도 재력이나 성적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를 그들이 가지게 되었을 경우, 교사로서의 내가 그들에게, 그리고 다른 평범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지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과제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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