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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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악이라는 말이 있다. ‘짐짓 악한 체한다라는 뜻으로 보통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논할 때, ‘성선설이나 성악설처럼 타고나길 선하거나 악하지, 부러 악한 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며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좀처럼 본심을 파악하기 힘들어짐에 따라 정치나 사건·사고에서는 때때로 빛과 그림자처럼 위악이 필요한 예도 많아졌다. 조선 후기만 보아도 노론의 영수이자 정조 독살설에서 유력 용의자로 치부되었던 심환지가 나중에 발견된 어찰로 인하여 사실은 정조의 뜻대로 정국을 움직이도록 협력했던 자로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 계급의 위로 올라갈수록, 해당 국가나 시대의 정세가 불안정할수록 더욱 복잡하고 치열해진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역사를 평가할 때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보았을 때 비로소 그 인물이 행동한 명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민주화 운동 대목이 그러한 부분이요, 당대에는 오랑캐에게 굴욕스러운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 축출의 한 가지 명분이 되었던 광해군이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지나며 기록이 사라지고, 조작되고 도덕 기준이 변하여도 꾸준히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들도 있다. 미합중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은 무능한데다 부패했고 사생활도 깨끗하지 못해 역대 대통령들을 놓고 인기 투표를 시행하면 항상 최하위에 든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도 길고 그만큼 수난의 세월도 장장(長長) 하니 한국사에서 최악인 지도자를 뽑으라면 1, 2위를 두고 다툴 사람도 많다. 특히 유교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치관은 실리를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다소 황당해 보일 수 있기에 조선시대 왕들은 심심찮게 불려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차치한다 해도 변호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는 법이다. 먼저 숭정제처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그리고 구하고 있는 명장을 스스로 위기에 빠뜨린 선조가 있다. 근대화 노력은 했다지만 권력욕에 비해 능력이 심히 모자라 중요한 시점에서 나라를 일제강점기에 접어들게 만든 고종도 종종 거론된다. 특히 인조는 청나라의 침공을 앞두고 반정으로 추대된 사례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호란을 자초한 치명적 실책을 무수히 보였으며 며느리인 민회빈강씨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여 훗날 효종의 정통성 문제와 예송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오죽하면 선조보다도 최악의 왕이라고 비판받을까? 사실 선조는 몽진과 그 자신의 시기만 제외하면 긍정적 평가의 여지라도 있지만 인조는 백성들의 생활은 생활대로, 나라의 위기는 위기대로, 그 와중에 권신들의 횡포는 감싸주는 암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인조 재위 14년에 발생한 병자호란은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으로 정점을 찍는다. 여기에 자신이 아들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정치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좋아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인조를 존경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조 1636>은 그러한 왕과 전쟁에 대하여 조선뿐만 아니라 명과 청, 그리고 인조반정이 성공하기까지의 전후 관계를 연도와 지도, 사료를 들어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필자는 가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 위키 페이지에 접속해 역사 인물의 행적을 눈으로 좇고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의미에서 일반인들에게 무겁게 느껴지는 역사를 가볍게 읽기 쉽도록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독자의 재미와는 별개로, 인조가 펼친 정치는 위급한 상황에서 너무나 태평하고 정세를 모르는 아둔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백성들 대부분이 죽거나 전리품으로 전락해 타국의 병졸들에게 농락당하는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호란을 겪어가면서도 친명 배금을 찾는 모습이나, 반정공신들에게 휘둘리기 이전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기까지 하는 행태는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위와 권력에 대해 집착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읽는 내내 인조 시대 권력층처럼만은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교훈을 뼈저리게 심어주었다. 앞서 언급했던 선조와 영조는 단점이 두드러지어서 그렇지, 그들이 저지른 일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른 방면에서는 잘한 일도 있어서 그들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인조는 정치적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정책에 대한 명분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왕이나 그 밑의 요직에 있는 신하들이나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비겁하게 움직였다. 정치적 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면서 득보다는 실이 컸고 권력 유지를 위한 명분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자신 대의 왕 자리를 지키려다 추후 자신의 아들, 손자 대까지 위태로워지는 무리수였다. 어쩌면 우리는 현재에 태어나 그런 지도자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교훈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흔히 인조와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쪽이 치달으면 다른 한쪽은 최악으로 묘사되며 시소처럼 위아래를 오간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왕뿐만 아니라 만백성이 그 시대의 증인 아니겠는가. <인조 1636>은 인조가 왕이 되는 계기에서부터 전개를 시작하지만 정작 인조보다는 각 전쟁과 사건의 배경과 그를 접한 사람들의 행위, 그리고 거기에 얽혀있는 이해타산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1등 반정공신인 김류와 이귀는 이 책에 인조와 비슷하게 주목받고 있으며 반정에서 앞장서는 역할을 맡았지만 2등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역모를 일으키려 했다는 모함까지 받아 그것을 실행해버린 이괄의 난에 대해서도 판세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어떠한 책을 좋아하게 될 때는 독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이를테면 고전으로 유명한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엘리자베스에게 시종일관 차갑게 대하던 다아시가 그녀의 충고로 개심하고 그녀를 위해 몰래 노력하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사실을 기술하는 역사 서적이라도 다를 바 없다. 인간이란 무릇 감탄고토가 본능인 생물이라 몇백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후손들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거나 보통 인간이라면 보이기 힘든 충절을 보여 마음을 울리지 않는 이상,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 쉽사리 좋아하거나 존경까지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아무리 지도자라 하더라도 보수적인 시대에 태어나 이런저런 제약 속에서 정책을 펼치고 살아가야 했으니 재미있는 대목을 찾는 게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특별히 재미있는 부분을 선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든 페이지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김류의 아들과 손자가 행한 방탕과 패륜 등은 내 안에 잠자고있던 애국심이 울게 만들었으나 그들의 행실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가 되었다. 인조 역시 거시적으로는 이후 조선이라는 국가 앞에 막중한 분기점을 놓았으나 누구나 한 번쯤 리더를 꿈꾸는 현대 사회에서 반면교사가 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사랑한 이유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의 스포트라이트가 백성들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세종대왕이건, 정조 치하건간에 울고 웃는 사람은 있었다. 그 극적인 희비는 대부분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내고 힘 없는 자들이 겪는다더욱 슬픈 사실은 우리 민초들의 이러한 삶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소명되기는커녕 조명받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에서처럼 <인조 1636>은 권력 앞에 밟히고 누웠던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고 불러준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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