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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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액자 속 세상과 액자 밖 세상과의 경계를 짐작하기 어려워 길을 잃기 쉬운 피그먼트 프린트(Pigment print) 작품이다. 작품과 교감하는 사람들을 4차원의 시공간에서 농락하듯, 뿌연 안개 속 세상을 카메라에 담은 민병길 작가의 <질료들의 재배치(안개)>는 작품을 처음 보게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나를 놔주지 않고 있다. 과거처럼 몇 가지 색을 만드는 데 제약이 따랐던 것도 아니고, 이렇게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도 무심코 흑백의 세상에 눈길을 뺏기고 만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각자 좋아하는 색을 꼽아보라 하면 갖가지 색이 등장한다. 타오르는 불처럼 새빨간 색, 어느 여름 바닷가에서 마주한 파랑. 물론 흑백도 자주 등장하긴 하지만 색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세상은 골라잡을 수 있는 뷔페 같아서 그들의 마음에 저마다 잊지 못할 이미지를 남긴다.

  색채의 마술사, 막상스 페르민은 그런 이미지와 색상 간의 관계에 집중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은 승려의 아들 유코가 하나의 진정한 시인이 되기까지, 또 그런 유코가 눈먼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가 되어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예술에 색을 입히는 과정을 배워나간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단순한 단편에 불과하지만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동화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는 것처럼 <> 역시 우리의 세상에 잠시 왔다 가는 하얀 눈이 무엇을 담고, 어떤 의미로 거듭나는지 겨울밤 눈 내리는 소리처럼 조용히 전개된다.

  처음 나는 이 책을 접하며 상당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소설이지만 시처럼 함축적이었고 이야기지만 실존했던 인물이 등장했기에 상당히 종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어릴 때 처음 장갑을 끼고 눈을 뭉치려다 번번이 흩어져버려 실패한 것처럼 장을 넘길 때마다 내가 읽어나가는 사이에 혹여 이전 부분이 녹아 없어지진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걱정하고 있었다. 몰입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흥미진진하다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기보다 하나의 모래시계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함에 언제 시간이 지나가는지 무심코 세어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아직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여하간 눈으로는 유코의 의식을, 신비로운 여인을 좇으며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내 안에서 새고 있는 그 무언가를 걱정하게 되었다.

  한때는 나도 시를 써보려고 애썼던 적이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포착해 한 편의 글로 남기고자 했었다. 안타깝게도 글 무덤만 남겼지만 말이다어떻게 보면 앉아서 글만 쓰는 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시가 어떤 예술보다도 어렵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걱정되었다그래서 더욱 유코가 시인의 길을 택해 어떤 결말에 닿을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소세키 선생과 니에주(Neige)가 지나온 길을 답습할까? 그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할까? 멀리서 눈을 보면 매우 푹신해 보이지만 그 밑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위험하다. 니에주가 돌아간 길은 그런 위험이 내재한 예술이었다. 소세키 선생은 그녀의 모습을 재현하기를 반복한 끝에 실명하게 된다. 설맹증의 일종이겠지만 소세키 또한 니에주처럼 위험한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위험이 그를 찾아왔으리라 짐작했다. 그런 그에게서 배우며 사랑을 알고 잃는 경험을 한 유코가 그들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어쩌나 염려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결과보다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여주듯, 나도 유코가 결말에서 어떤 삶을 택했는지는 차치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이야기이다.

  아슬아슬한 불안감과 사랑에 대해 포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모순적인 작품이지만 작가에게 붙은 수식어를 고려해볼 때, 이처럼 색을 잘 연상시키는 작품이 더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다. 같은 세상에서 눈을 뜨고 감건만, 어떻게 그만 이렇게 강렬한 색을 뽑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그가 작품을 쓰지 않으면 그가 보는 세상을 볼 수가 없을까? 나는 책을 읽다가 그 답을 찾았다. 그러고 보면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다채로운 색의 세상에 파묻혀 살아 마음의 눈이 멀었는지도 모른다.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여인과 그에게 닿기 위해 눈부신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소세키처럼 무언가에 닿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시인이 되기 위해 마음에 색을 입히는 훈련을 했던 어느 청년은 그것이 자신의 색이 아님을 알아야 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는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서로 사랑했다. 줄 위에 머물러 있었다
눈으로 지어진.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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