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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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무더운 여름, 교회 지붕에 올라가 일하고 있는 인부들을 비추며 시작한다. 지붕을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이는 무뚝뚝한 인부 랜드와 그보다는 좀 더 어려 보이는 게리의 모습. 중간중간 묘사되는 배경은 독자에게 그들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편 게리는 일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떠드느라 바쁘다. 급기야는 상상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머지, 위태로운 상태로 비를 잡으려다 지붕에서 미끄러지고 만다. 간신히 랜드의 손을 잡고 버티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급박함 속에서 랜드는 게리에게 어디를 붙잡아야 하는지 알려주며 이와 동시에 자신은 빠르게 달려가 게리가 밟을 수 있도록 지지대를 설치한다. 이윽고 랜드의 지시에 따라 비계를 밟고 내려오게 된 게리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예리한 사람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게리를 구하는 랜드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능숙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 랜드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초반의 일화를 읽으며 앞으로 게리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리라 생각했었다. 비록 지붕에서 이야기하다 떨어진 것 말고는 활약이란 없었지만, 그 나이대 청년이라면 가졌을 법한 활기와 상상력, 자신감이나 쾌활함 등이 모험의 주인공이라면 으레 가질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랜드는 과묵했다. 게리의 상상 속에서 랜드의 역할이란 자신의 성공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해 줄 단역에 불과했을 정도였다. 게리 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조용하고 그 내면을 알기 어려우면서 충동적이기도 한,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는 랜드의 모습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홀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길들지 않았으면서 이미 지극히 타락해버린 내 눈에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쉽게 이해받지 못할 열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되는 동안 초점은 번번이 캐벗이나 브레이, 배닝처럼 다양한 인물들에게 할애된다. 한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랜드의 위치를, 그것도 랜드의 내면과 행적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문학이라는 장르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설터의 서술방식은 서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상당히 개성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랜드는 게리가 멕시코 여자라고 묘사했던 루이즈에게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루이즈의 아들 레인과 가볍게 산을 타러 가기도 하며 퍽 다정해 보이는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인과 등반하러 간 곳에서 함께 산을 탔던 동료 캐벗과 재회하며 랜드는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울고 있는 루이즈를 두고.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이 주는 안락함을 떠나 춥고 변덕스러운 날씨를 품은 샤모니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산과 독대하지 않는다. 산을 혼자 오르는 인물이지만 모순되게도 산 밑에서는 다양한 인물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쌀쌀맞은 프랑스인, 어리숙한 일본인, 은행 창구의 어느 직원, 비강, 카트린과 콜레트, 시몬과 수전. 그는 고독을 선호하는 인물이면서 그 고독을 감내하기보다 충동에 따라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해결한다.

  산을 대할 때에도 다른 산악인이라면 다소 무모하다고 이를 방식을 택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사용할, 타인이 박아놓은 피톤을 뽑아버리는 행위가 그런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본능적 행위가 도리어 사회가 그를 찾도록 만들게 하기도 했다. 드뤼 서벽을 정복하던 과정에서 캐벗이 심각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조난자를 구하기 위해 모두가 말리는 루트로 오르기도 하며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불똥같은 흐름은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가 자기 아들조차 보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의 남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끔 한다. 종래의 그는 지나온 모든 여정을 한때의 기억으로 묻어두고 사회와 등반에서 만족하지 못한 채 끝내버린다. 어찌보면 뜨거운 열기를 기대했을 독자에게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품 밖에서 우리가 어떻게 여기던 작품이 진행되는 모든 순간 동안 그는 방황한다. 마치 이보다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보증 수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한다. 산은 랜드에게 한번도 반기는 얼굴을 한 적이 없음에도 그는 이를 수용하고 끈기 있게 그곳을 찾는다. 그의 등반은 신을 찾는 신자처럼 산 앞에 자신을 데리다 놓고 한계를 시험해보는 방식이다.

  작가인 제임스 설터는 실존 인물 게리 헤밍(Gary Hemming)을 투영한 각본을 쓰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으로서는 너무 과묵하다라는 평을 받고 각본은 반환당한다. 그대로 영영 빛을 보지 못할 위기에 처했던 작품은 어느 편집장의 설득 끝에 소설로 재탄생한다. 처음에는 이 속을 알기 어려운 인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웠던 탓에 서술을 좇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순간이 있었다. 샤모니, 드뤼, 아이거, 그랑드조라스, 워커를 오가는 산악인들의 정복욕과 출세욕 그리고 생명 앞에서의 순수한 의지는 태양 빛을 반사하는 설산의 풍경처럼 빛난다. 동시에 그들은 그 모든 것에 중독된다. 캐벗은 다리를, 브레이는 목숨을 잃고서 산과 이별하고 사회의 품에 돌아가게 되었다. 랜드는 안전하게 산을 내려올 수 있었지만 워커 산을 정복하기 위해 오르다 포기하게 되며 이전까지 자신 안에 있었던 패기와 의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산을 오르내리며 명성을 쌓았지만 성공으로 귀결시키지는 않았던 그이기에 산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를 캐벗에게서 찾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뒤로 그는 환멸 속에 살아간다.

  이 책에는 수많은 지명과 인명, 심지어는 등산 용어가 등장한다. 독서는 좋아하지만, 산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딘가 낯선 곳에 갑자기 떨어졌다고 느낄 만큼 소외감이 들 수도 있다. <포 페더스(The Four Feathers)>처럼 글이 쓰였을 시대를 알려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친절한 번역은 틈틈이 산악 용어나 지명을 알려주며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이음매가 되어주지만 이로서는 역부족이다. 독자는 필연적으로 당혹감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우박처럼 쏟아지는 이 불친절한 전개가 랜드가 수많은 사람을 거치며 그들 사이에서 느끼는 고독 혹은 이질감이라고 생각했다. 적지 않은 여성들과 깊고 얕은 관계를 거치며 때로는 마음만 먹으면 평범한 인간인 양 살아왔던 랜드는 산을 통해 자신을 찾고 잃는다. 책 표지만을 보았을 때, 나는 <고독한 얼굴>의 랜드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떠올리게 할 것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으며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고독한 얼굴이라는 작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산악인이자 한 인간으로서 이해받기 어려운 내면을 품은 자의 긴 여정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에서 혹은 대중이 기대하는 산악인의 장엄함, 미지를 향한 호기심은 암벽을 오르는 순간엔 버려야 할 잡념에 불과하다. 장비와 식량, 침낭과 동료와 함께 산에 오를 때에는 가지고 올라야 할 것이 많아 무겁기 마련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며 어느새 가벼워진 몸을 발견할 수 있다. 랜드가 거친 삶의 여정도 산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살아남은 산악인들이 변하듯,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려가며 산을 올랐다. 동시에 버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를 지독하게 따라온 고독감은 인생의 종착지에서 그를 비웃고 있었다.

  <고독한 얼굴(Solo Faces)>은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등산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날 것의 산과 등반, 랜드라는 사람에 대하여 비추고 있기에 쉽사리 읽히게 되는 여타 작품과는 달리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어려움과 함께 단순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산악인으로서의 고뇌와 방황은 우리에게 낯선 감각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일상에서는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운 세상의 이면 중 하나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터는 독자가 너무 쉽게 그들을 공감한다고 얘기하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만큼 랜드의 내면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가까운 듯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차갑지만 근사해 보이는 알프스의 산들을 대면하게 된다. 어쩌면 일반인들에게 산이 그런 존재로 인식되는 것처럼 그에게는 세상이 그런 곳일지 모른다. 실존 인물인 게리 헤밍은 세상으로 돌아온 뒤 36살의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자살 직전의 그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빨리 미국을 떠나야만 돼.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죽음이 나를 덮치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정복하러 떠나야만 한다. 이곳에도 분명히 조난과 낙석, 악천후는 존재할 것이다. 그 모든 위험을 극복했을 때 찾아올 사무치는 고독감을,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고 맞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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